[중앙 시평] 법치논쟁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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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 법조인의 정치적 지위는 어떠한가. " 어느 외국 법학자가 이런 주제를 다룬 연구보고서 초고를 보내왔다. 거기서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권위는 높지만 권력은 없다" 는 표현이다. 조선시대의 학자 겸 정치인과 달리 권위와 권력이 분리되고 법조인에게는 단지 권위가 주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 핵심 못꺼낸 말잔치들

지난 '개발국가' 시대에 확실히 법과 법조인은 주변적 존재였다. 경제개발은 보편타당한 법의 지배가 아니라 개별적인 정경유착을 통해 이뤄졌다. 그런 만큼 법과 법조인이 중심에 서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제 사정은 달라지고 있고 또 그래야 할 것이다. 좋든 싫든 세계화의 물결은 우리가 거역하기 어렵다.

정실과 연고를 바탕으로 한 구시대의 관행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지구적 차원의 행위기준이 강요되고 투명성과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법의 지배의 원리가 이제 더 이상 장식적이거나 주변적 원리가 아니라 세상사의 중심원리로 돼 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따라 법조인의 위치 또한 중심부로 접근할 것임은 예상키 어렵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얼마 전 대한변호사협회의 성명서와 이를 계기로 한 법치논쟁 파동은 그저 일과성의 해프닝 이상의 것일지 모른다.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우연찮은 징표는 아닐는지. 다만 아쉬운 것은 대한변협의 성명서에 미비한 구석이 보이고 뒤이은 논쟁 또한 겉돌았다는 점이다. 성명서 채택 과정이나 정파적 배경 여부에 대해 시비가 인 것부터 그렇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법치논쟁이 제대로 핵심을 다루지 못한 것은 정치적 입장 차이 외에도 법치주의의 의미에 대한 혼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변협의 성명서에서 여러번 나타나는 것은 '실질적 법치주의' 의 강조다. "현 정부의 개혁이 실질적 법치주의에서 현저히 후퇴했다" 는 것이다.

실질적 법치주의라는 용어는 자유.평등.정의를 실질 내용으로 하는 법의 지배, 곧 '좋은 법' 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나쁜 법의 지배가 아니라 좋은 법의 지배가 돼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우리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원리다.

그러나 현실 평가를 위한 기준의 차원에서 보면 실질적 법치주의라는 말은 고유한 맛을 잃는다. 실질적 법치주의라고 할 때 '법치주의' 보다는 '실질적' 이라는 접두어에 초점이 모아지게 된다. 그러나 무엇이 '좋은' 법이냐에 관해서는 정책판단이 중요하고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법조인이 전문성을 내세울 부분은 한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신문사 소유지분 제한이나 주5일 근무제가 좋은 법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법조인으로서 우선 주목했어야 할 것은 '좋은' 법에 의한 지배 이전에 법의 지배 또는 법치 그 자체다. 이것을 형식적 법치주의라고 해 낮추어 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자의적 권력행사를 통제한다는 그 자체의 고유하고 소중한 덕목을 지닌다. 법을 단지 권력의 도구로 삼을 뿐인 고대 중국의 법가(法家)사상과는 전혀 다르다.

*** 법 집행 공정성 다뤘어야

법의 지배의 원리를 형식적 차원에서 이해할 때 그 핵심요소는 다음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정규적 절차에 의해 법이 제정돼야 한다. 둘째, 국민에게 법준수를 요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법으로서의 기본조건(예컨대 법 규정이 명확해야 한다는 등)을 갖추어야 한다. 셋째, 사법권이 독립하고 법 집행이 공정해야 한다.

만일 권력의 자의적 행사 여부, 특히 법 집행의 공정성 여부에 초점을 맞추었더라면 법치논쟁은 훨씬 생산적이었을 것이다. 또 변호사 단체 내부의 갈등도 피했을지 모른다. "현정부의 법 집행은 공정한가. "

이런 주제로 변호사 단체가 제대로 된 토론을 벌이면 좋겠다. '법의 지배' 를 잣대로 법조인이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 법과 법조인이 정치적으로도 주변부 아닌 중심부로 다가서야 한다.

梁 建(한양대 법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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