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기자가 캐낸 중국 광산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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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국 지도층 인사가 이례적으로 언론의 역할을 칭송했다. 지난달 17일 중국 광시(廣西)자치구 난단(南丹)현 주석광산에서 발생, 수백명의 인명피해를 낸 침수사고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기자들의 헌신적인 취재 덕분이라는 것이다.

주룽지(朱鎔基)총리의 측근으로 지난 5일 자춘왕(賈春旺)공안부장을 수행해 현지를 방문한 국가경제무역위원회의 리룽룽(李榮融)주임은 현장에서 "(기자들이)제대로 했구만(做得周到. )" 이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관이 언론을 통제하는 중국에서 영도인(지도자)급 인사가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 사고는 기자들이 이를 은폐하려던 광산촌 책임자의 방해공작을 물리치고 목숨을 건 채 끈질기게 취재함으로써 진상이 밝혀졌다. 사고가 나자 광산촌 책임자 리둥밍(黎東明)은 3백여명의 보안요원을 동원해 지역을 폐쇄했다.

그리곤 "누구도 광산촌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공안이나 기자는 사절이다. (막장붕괴사고는)내가 처리한다. 협조하면 보상을 후하게 해주겠다.

그러나 거역하면 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라며 함구령을 내렸다. 광부들과 유족들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광시(廣西)일보의 한 기자가 사고 발생 열흘 만인 지난달 27일 낌새를 채고 현장에 접근했다.

광산촌 앞에서 몇몇 주민들과 얘기를 하려는 순간, 그는 보안요원들에게 둘러싸였다. 이들은 총을 겨누고 칼끝으로 그의 몸을 가볍게 찔렀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허둥지둥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틀 뒤 동료 기자와 함께 허름한 농부 복장을 하고 험한 산길을 넘어 현장에 다시 접근했다. 그러나 보안요원에게 또 적발돼 초소에 끌려갔다. 모진 고초를 겪다 보안요원들이 방심한 틈을 타 초소를 빠져나온 이들은 외부로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마을로 잠입해 주민들을 상대로 진상을 취재했다. 며칠 뒤 주석광산촌의 사고소식은 광시일보에 큼지막하게 실렸다.

언론이 아니었으면 이 사고는 영원히 묻혔을 것이고 광부들은 계속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언론의 과감한 진실 보도는 사회를 정화하는 힘이 있음을 확인시켜준 사례다.

진세근 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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