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상 독무대는 계속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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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한국바둑의 무적(無敵)시대는 언제까지 갈까.

한국은 지난 4일 조훈현 9단이 후지쓰배에서 우승하면서 세계대회에서 여섯번 연속 우승하는 신기록을 작성했다. 지난해 8월부터 올 8월까지 1년간 모든 세계대회를 한국이 싹쓸이한 것이다.

우승의 주역은 이창호 9단,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 등 3명이다. 소위 '한국의 3강' 이라 불리는 기사들인데 이들은 계속되는 세계제패를 통해 어느덧 한국의 3강이 아니라 '세계의 3강' 이라고 할 수 있게 됐다. 바둑에 세계랭킹이 있다면 이들이 1, 2, 3위를 독식할 것은 명백하다.

기록을 돌아보면 지난해 8월 조훈현 9단이 후지쓰배에서 중국의 창하오(常昊)9단을 1대0으로 꺾고 우승했고 12월엔 유창혁 9단이 일본의 야마다 기미오(山田規三生)8단을 3대1로 격파하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2001년에 들어 이창호 9단이 세계 최대의 잉창치(應昌期)배에서 창하오 9단을 3대0으로 일축하고 우승상금 40만달러를 차지했다.

곧이어 5월의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이창호 9단이 같은 한국의 이세돌 3단과 치열한 각축전을 전개하다가 3대2로 역전승했다.

6월에는 유창혁 9단이 중국으로 건너가 춘란배 결승에서 일본의 왕리청(王立誠)9단과 격돌하여 첫판을 내줬으나 내리 2연승하여 상금 15만달러를 거머쥐었고 며칠 전엔 조훈현 9단이 후지쓰배에서 재차 우승함으로써 한국바둑은 세계대회서만 여섯번 연속 우승했다.

한국의 3강이 차례로 돌아가며 두번씩 우승한 것인데 1년간 벌어들인 우승상금만도 16억원에 달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 '4인방 시대' 가 열린 것은 11년 전인 1990년부터다. 그 4인방 중 서봉수 9단 한 사람만이 쇠퇴의 기미를 보였을 뿐 나머지 3인은 오히려 점점 강해지고 있으니 이들에겐 권불 10년(權不十年)이란 말도 무색하기만 하다. 처음엔 한국도 최강 이창호 9단 한 사람에게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이9단이 주춤하기 시작한 2000년부터는 조훈현 9단과 유창혁 9단이 부쩍 힘을 내면서 이9단의 빈 공간을 메워줬다. 이들 '3강' 의 힘은 곧 한국바둑의 주력이다. 중국과 일본은 이들의 기풍과 장단점을 연구한 지 오래됐으나 여전히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막강하기 그지없다는 한국의 신예들 역시 이들 3강과는 매미날개 같은 한겹의 차이가 있어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들 '3강' 의 본질은 무엇일까. 왜 강한 것일까. 그걸 파악하고 깨뜨리는 일은 중국과 일본바둑의 숙원일 뿐 아니라 정상을 꿈꾸는 무수한 국내 신예기사들의 소원이기도 하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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