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정약용 '농촌의 여름날'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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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내기 활 쏘고 술 취하여 비틀거리며 걸어오니

석양에 사람 그림자 멀리 들쭉날쭉.

향촌에선 셈해 보아 획수 많은 걸 치기에

종이에 승전기 그려 높다랗게 쳐드노라.

싱싱한 갈치며 준치랑은 서울에서 가로막히고

시골집에는 가끔 새우젓 사려 소리만 들린다.

돈으로 팔지 말고 보리로 받으라고만 하니

어부들의 살림살이 걱정이라오.

- 정약용(1762~1836) '농촌의 여름날' 중

다산의 나이 이미 70세 때의 작품. 노년의 눈에 비친 시골 풍경이 천진스럽고 또한 자미(滋味)스럽다.

경강(京江)에서 온 장삿배가 새우젓 장수를 떨어뜨려 놓고 갔던 모양. 적막에 겹던 여름날 강촌 마을이 "새우젓 사려" 소리로 한바탕 시끄러웠을 듯.

이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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