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 칼럼] 고래 노조와 새우 노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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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울산은 고래잡이 기지였다. 지금은 대기업의 큰 공장들로 빽빽하다. 얼마 전 나는 울산에 가서 전부터 인사가 있는 J사장을 만나 그로부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이야기의 다음과 같은 새 버전 하나를 들었다. J사장은 울산에 있는 한 소규모 제조업체의 소유주고 운영자다.

이 소기업은 제품 전량을 이곳의 몇몇 대기업에 납품한다. S대기업도 고객 가운데 하나다. S대기업 노조가 임금 투쟁에 들어갔다. 고래 기업과 고래 노조 사이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에서 노조는 임금 인상을 쟁취하고 파업을 거두었다. 이튿날 S대기업의 구매 담당자가 득달같이 J사장을 찾아왔다.

인상된 임금의 재원을 짜내려면 납품 가격을 깎을 수밖에 없다면서 다른 납품 업체들과 같이 J사장네 소기업도 천생 납품가를 5% 낮춰 주어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J사장은 별수없이 거기에 일단 응해 놓고 있다. 불황을 맞아 수년째 J사장은 간댕간댕 손익분기점에서 이 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보다 납품가를 더 깎으면 결손을 낼 수밖에 없다. J사장의 앞에는 다음과 같은 선택이 있다. 이 선택은 이웃집 처녀가 시집을 간다고 해서 자신은 목매달러 가는 총각의 것과는 다르다.

이 총각에게는 마음만 달리 먹으면 세상에 널린 것이 처녀들이다. 그러나 J사장의 소기업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목매달러 가는 것이기는 마찬가지다.

첫째는 손해를 보면서 그대로 가동하는 것, 둘째는 모든 종업원의 임금을 납품가격 인하 폭에 맞춰 인하하는 것, 셋째는 S대기업과는 거래를 끊고 그래서 줄어드는 생산량에 해당하는 인력을 감원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의 감원이나 감봉은 대기업의 고래 노조가 임금 인상에 성공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기업의 새우 노동자가 치러야 하는 등 터지기다.

J사장에게서 자수성가의 뿌듯함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J사장은 울산에 있는 소기업 사장들 몇몇과 자그마한 친목계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친목계 계원들이 떼거리로 지금 형무소 살이를 하고 있다. 부도를 냈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 캐시 플로의 적자를 메우다가 생긴 일이다. J사장은 이 친목계의 간사로서 감옥으로 그들을 위로차 면회 다니면서 결심한 듯하다. "회사의 문을 닫으면 닫았지 빚을 내서 적자를 메우지는 않겠다" 고.

J사장네 소기업의 노동자에 비해서 S대기업 노동자는 동일 숙련도의 경우 임금이 50%가 높다. 울산에 있는 어떤 대기업은 1백% 더 높다.

이런 대기업이 임금을 5% 올리고 그것을 여러 납품 소기업들에 전가하면 이들 소기업은 임금을 대기업이 올린 퍼센티지의 2배인 10%를 내리거나, 종업원을 10% 감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J사장은 자기가 내릴 선택을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로 좁혀 놓고 있다.

대기업의 소기업에 대한 독점적 지위가 이제는 결과적으로 대기업 노조의 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착취 구조가 되었다. 이 구조를 통해 대기업 노조의 부익부는 곧바로 소기업 노동자의 빈익빈으로 연결된다. 한 쪽에서 임금이 오르면 다른 쪽에서는 직장을 잃거나 임금이 내린다.

J사장에 의하면 S대기업 노조는 파업 중 비노조원의 출근을 몽둥이를 들고 서서 저지했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폭력은 정부만이 합법적 행사권을 가지는데도 말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이 노조 연합체는 전국적 파업을 결정하는 등,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인 노동의 공급을 독점적으로 간섭할 수 있다. 그런데 파업을 해도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면제받고 있으므로 결행에 따르는 리스크나 책임은 면제받는다.

폭력.독점.무(無)리스크, 대기업 노조의 이 세 가지 특권 행사 때문에 등이 터지는 것은 소기업의 새우 노동자들뿐만 아니다. 한국 경제 전체가 등이 터지고 있다. 신규투자를 얼어붙게 하고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외국의 기술과 자본을 문전 축출한다.

이 특권 행사를 양보받지 않은 채 정부가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수요를 진작하면 다만 인플레이션과 경상수지 악화에 불을 지르는 것이 될 뿐이다.

강위석 `emerge새천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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