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현대미술…' 전 유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6월 21일부터 8월 1일까지 '한국현대미술의 전개- 전환과 역동의 시대' 전을 열고 있다. 이 전시는 그동안 평가가 미진했던 1965년부터 10년 동안의 시대를 재평가하자는 기획이다.

그러나 충분한 연구와 준비기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졸속으로 시작되어 학예 역량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당초 목표로 했던 새로운 해석이나 평가는 찾기 어렵고 종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피상적 관점으로 작품들을 나열했을 뿐이다. 게다가 재현작품에 큰 문제가 있어 전시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역사적 사실을 오도할 소지마저 있다.

이 전시가 다루고 있는 시기는 국내 아방가르드 운동이 가장 왕성하게 전개되었던, 한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시기였다.

그 가능성의 싹들은 70년대 이후 화단이 패권적 구도로 획일화되면서 대부분 멸절돼 버렸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시기이기도 하다. 여러 미술집단이 다양한 실험적 목소리를 가지고 등장했지만, 설치미술이나 개념적인 입체작업들은 원작과 이를 보충할 사료까지 많이 유실돼 전시를 꾸미기가 쉽지 않다.

현대미술관은 작가들로 하여금 망실된 작품을 재제작하게 하고 당시의 해프닝과 이벤트는 재연토록 하였다. 내실있는 전시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30여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재현된 작품들은 대체로 원작의 에너지나 감성이 제대로 담겨 있지 않았다. 조악하기 이를데 없는 죽은 오브제라고 할까. 작고한 일부 작가의 경우는 그와 절친했던 작가가 이를 재현하는 난센스를 연출하기까지 했다.

재제작할 시간도 충분히 주지 않고 비용도 전혀 지원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렇게 제작된 리메이크 작품들을 선별 소장함으로써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을 효율적으로 확보하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하는데 헛소문이길 바란다.

작품 선정도 면밀한 비평적 고려와 분명한 관점없이 이뤄져 그룹의 주장이나 작품들간의 상관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대에 대한 재평가와 멸실된 자료의 복원을 꿈꾸던 전시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역동성도 새로울 것도 없는, 부풀려진 자료전 성격의 맥빠진 행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현대미술 다시 읽기' 는 과거의 역사를 엄밀하게 재조명함으로써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규명함은 물론 다양한 시각으로 우리 미술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같은 작업을 할 때는 더욱 철저한 연구와 자료수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자칫하면 미술사를 오도하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한국현대미술의 전개' 시리즈를 기획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이란 공적 공간이 가지는 사회적, 역사적 책임성을 방기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찬동 <큐레이터.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