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가 한국 교통문화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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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승객 편의를 위해 불필요한 주행거리를 줄인다" 며 특정지역에서 늘 불법 좌회전을 해오던 서울 왕십리의 한 마을버스가 요즘 달라졌다.

3백여m를 더 달려 제대로 U턴을 하고, 신호도 꼬박 지킨다. U턴 지점에는 새로이 정류장도 만들었다.

교통 위반 장면을 찍어 신고하는 '교통 파파라치' 때문에 생긴 일이다. 교통경찰이 대충 눈감아주던 관행이 그들에겐 꼼짝없이 적발되면서 버스회사가 손을 든 것이다.

사진 신고제가 시작된지 5개월째. '돈벌이용 마구잡이 신고' 라는 시비 등 부작용도 있지만 교통문화를 바꾸는 역할도 단단히 하고 있다.

◇ 대중교통들 긴장=교통경찰들에게 부담스런 존재인 버스.택시 등 대중교통 차량들. 버스의 경우 운전기사가 면허증 제시를 거부하며 시간을 끌면 승객들이 "빨리 보내달라" 고 항의하고, 택시 역시 "딱지를 끊으면 사납금도 못채운다" 며 버티는 경우가 잦아서다. 그러나 예외를 두지않는 파파라치들 덕분에 성역은 무너졌다.

서울 O택시회사 운전기사 金모(44)씨는 "두달 만에 네번을 당하고 나니 조심할 수밖에 없더라" 며 "파파라치의 위력을 가장 절감하는 사람이 우리들" 이라고 말했다.

◇ 신호체계 1천여곳 바꿔=3월 10일 신고제 도입 이후 지금까지 경찰은 단골 위반지역과 교통신호가 부적절한 곳 등 9백10곳의 교통체계를 개선했다. 신호등 점멸운영, U턴.갓길 운행 허용 등이다. 1백29곳은 아예 신호체계를 바꿨다.

"파파라치들의 눈을 통해 사고 위험지역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을 알았다" 는 경찰청 교통안전과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면서 신고가 가장 많던 서울의 신고건수가 크게 줄었고, 파파라치들은 지방으로 활동영역을 옮겨가고 있다. "따라서 지방의 미흡한 교통체계도 서서히 개선될 것" 이라는 경찰의 관측이다.

◇ 1백10만명 과태료=그동안 전국에서 파파라치들이 신고한 건수는 1백77만8천건. 이중 1백10만5천여건이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적발 내용 중 가장 많은 것이 중앙선 침범(1백7만건)이다. 같은기간 경찰이 단속한 중앙선 침범건수는 13만건이다.

성호준.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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