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연봉왕 美 오라클 CEO 래리 엘리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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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엘리슨(66·사진) 미국 정보기술(IT) 업체인 오라클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다. 최근 미국 기업들이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그의 지난해 연봉은 모두 8450만 달러(약 940억원)였다. 월급 610만 달러에다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행사해 얻은 7840만 달러를 더한 것이다.

오라클의 주가 상승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지난해 오라클 주가는 30% 넘게 올랐다. 실적 개선보다는 서버를 제작하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인수가 호재였다. IBM과 휼렛패커드가 뛰어드는 바람에 인수전은 치열했다. 엘리슨은 74억 달러를 제시하며 끝내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품 안에 넣었다. 데이터베이스 구축업체(오라클)와 서버 ╂拜말瑛� 결합이다. “적잖은 시너지를 예상할 수 있다”고 월가는 평가했다.

그런데 그가 최고 연봉 CEO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실리콘밸리 안팎에서는 특이한 반응이 나왔다. “그의 화려한 소비와 여성 편력은 여전하겠구먼”이라는 촌평이었다. 실제로 그는 IT 억만장자 가운데 가장 씀씀이가 크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요트 라이징선호(길이 138m)를 소유하고 있다. 그는 할리우드 실세인 데이비드 게펀과 공동으로 2억 달러를 들여 그 배를 건조했다. 엘리슨의 또 다른 취미는 스포츠카 수집이다. 그의 자동차 포트폴리오에는 아우디 R8과 맥래런 F1, 혼다 아큐라 NSX 등이 들어 있다.

그의 전기를 쓴 마이크 윌슨은 “돈보다는 추상적 가치를 중시하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들과는 달리 엘리슨은 돈과 권력 자체를 즐긴다”고 평했다. 그래서 엘리슨의 별명은 ‘찰스 케인’이다. 케인은 미국 영화 ‘시민 케인’의 주인공이다. 오슨 웰스 감독이 1941년 영화 속에서 그린 케인은 재력과 권력을 만끽하며 한평생 살다 갔지만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다.

엘리슨은 90년대 애인과 데이트하다 마음에 드는 저택을 발견하고 수백만 달러를 즉석에서 지불하고 사들였다. 이런 씀씀이와 애정행각 때문인지 그의 현재 아내 멜라니 크래프트는 네 번째 부인이다. 이는 영화 ‘시민 케인’의 주인공이 대통령 가문 여성과 결혼 생활을 하는 와중에 미녀 가수와 바람을 피우는 모습과 비슷하다.

엘리슨의 유년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1944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유대계 10대 미혼모였다. 그의 생모는 엘리슨을 키울 자신이 없어 친척에게 입양시켰다. 생후 9개월 만이었다. 그의 성 엘리슨은 양부모한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는 똑똑했지만 출석을 제대로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일리노이주립대를 2학년 때 중퇴했다. 이후 시카고대를 한 학기 다녔을 뿐이다.

그는 시카고대 시절 컴퓨터 구조와 프로그래밍을 처음 알게 됐다. 이후 그는 IT 회사인 암펙스에서 일하면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위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그 데이터베이스 이름이 오라클이었다. 그는 77년 자신의 회사를 설립한 뒤 이름을 오라클로 정했다.

엘리슨의 재산은 지난달 말 현재 280억 달러다. 세계 6위 부자다. 미국 내에서는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에 이어 세 번째다. 그는 애플의 창업자 겸 CEO인 스티브 잡스와 절친한 친구 사이다.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96년 엘리슨은 애플 이사를 맡았다. 친구 잡스의 조직 장악을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몇 년 뒤 그는 애플 이사 자리를 내놓았다. “너무 바빠 이사회에 제때 나갈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게이츠와는 앙숙이다. 미국 정부가 MS를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소송을 진행할 때인 2000년 엘리슨은 사설탐정을 고용해 MS 뒷조사를 벌였다. MS가 자사를 옹호하는 단체에 뒷돈을 대주고 있다는 증거를 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뒷조사 사실이 들통 나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당시 엘리슨은 “우리는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 밝히려 했을 뿐”이라며 “우리 조사는 만용이 아니라 공공의 의무였다”고 강변했다. 이는 영화 ‘시민 케인’의 주인공이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유명 인사 뒷조사를 벌이며 국민의 알권리를 주장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최근 그는 2010년 연봉으로 단 1달러만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은 스톡옵션을 행사해 돈방석에 앉았지만 경영은 그만큼 뛰어나지 않아 주주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밑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성공한 사람답게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할까.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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