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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인문학과 CEO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인문학을 전공한 최고경영자(CEO)들이 미국에서 각광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간지 'USA 투데이' 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 1천대 기업 최고 경영자들 가운데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거나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소지한 사람은 전체의 3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보다는 대학에서 역사나 철학.문학 같은 인문학을 전공한 최고경영자들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칼리 피오리나 휴렛 패커드(HP)회장은 스탠퍼드대학에서 중세사와 철학을 전공한 경우다. 코닝의 존 루스 사장은 인디애나주 얼햄대학 사학과 출신으로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역사를 전공했다.

월트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은 오하이오주 데니슨대학에서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다.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은 텍사스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단 한개의 경영학 과목을 들었을 뿐이다. "창의적 사고가 중요한 것이지 대학 전공은 경영자질과 무관하다" 고 그는 말한다.

인문학을 뜻하는 영어단어 휴매니티스(humanities)는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 에서 유래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인간다움' 이다.

기원전 55년 로마의 철학자며 정치가였던 키케로는 웅변가 양성과정을 개설하면서 후마니타스란 이름을 붙였다. 인간과 인간정신의 본질을 꿰뚫고 있어야 대중을 감동시키는 연설을 할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수사학과 문학.철학.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웅변가 키케로의 신념이었다.

좁은 의미에서 인문학은 '문.사.철' 로 일컬어지는 문학.역사.철학에 종교와 예술 일반을 더한 개념이다. 여기에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더해 기초학문으로 부르기도 하고, 대학에서는 이를 교양과목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인문학이 고사(枯死)위기에 처해 있다. 돈이 되는 학문으로 학생들이 몰리고, 정부도 'BK21' 이니 '신지식인' 이니 하면서 캠퍼스에 잔뜩 돈바람을 집어 넣다 보니 기초학문은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됐다. 지식정보사회의 최고경영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창의력과 통찰력이다.

파편화한 개별 전문지식보다는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상력과 영감, 그리고 감성이 훨씬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과 자유로운 상상력, 시대를 꿰뚫는 안목은 교양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보스의 통솔력보다는 리더의 교양이 최고경영자들에게 필요한 시대가 됐다. 인문학이 추구하는 목표가 바로 '균형잡힌 교양' 아니겠는가.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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