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방통행 외교'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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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외교노선이 각종 국제협약을 둘러싸고 유럽.중국.러시아 등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의 참여 거부로 기후변화협약 교토(京都)의정서와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이 사문화의 위기에 빠진 것이나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이 폐기될 운명에 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 탈퇴.거부.독주외교=출범 직후 교토의정서 탈퇴와 미사일방어(MD)체제 강행을 선언한 부시 행정부는 상원서 비준거부된 CTBT의 재고를 요청하지 않기로 해 이를 사문화시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1996년 유엔 특별총회에서 채택된 이 조약은 원자로를 가진 44개국이 모두 비준하지 않으면 발효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비준 거부로 사실상 사문화할 운명이다.

미국은 또 지난 25일엔 제네바에서 열린 생물무기협약(BWC)회의에서 생물무기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검증의정서 채택을 거부했다.

◇ 국익이 국제협력보다 우선=부시 행정부가 다른 나라들의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밀어붙이기 식의 전략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자국 이익 우선이란 공화당의 전통적 외교 노선 때문이다.

교토 의정서에서 탈퇴한 것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따른 자국 제조업의 부담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BWC 의정서를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인 것으로 분석된다. 생물학 무기 개발 기술은 생명.유전공학 등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어 현장방문 등 검증절차를 받아들일 경우 기술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CTBT 비준 거부는 MD와 마찬가지로 부시 행정부의 안보전략과 맞물려 있다. 부시 행정부의 의도대로 미국과 러시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전량 폐기 등 핵전력을 감축하고 나면 남은 핵무기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이때 남은 핵무기의 신뢰도와 파괴효과, 안전성 검증 등을 위해 핵실험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 일방주의와 다자주의=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유럽.러시아 등이 미국의 행동을 '일방주의 외교' 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언론 등도 이를 '고립주의 외교' 라 부르며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현실에 맞지 않는 국제 협약을 재검토하자는 것" 이라며 "일방주의가 아닌 현실주의" 라고 맞서고 있다.

외교에서 국익을 우선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다만 부시 행정부가 전임자였던 클린턴 행정부 때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다자간 협조' 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국익과 국제 협조의 균형을 잃고 있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높아진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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