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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이 남긴것] '남자들 게임' 신문업 성벽 없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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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고(故)캐서린 그레이엄 전 워싱턴 포스트 명예회장은 무엇을 남기고 갔는가. 많은 사람이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언론 사주와 여성,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성취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그레이엄 회장은 언론경영인으로서 권력의 위협을 뿌리치고 일개 지방지였던 포스트를 자유언론의 수호자이자 세계적인 권위지로 만들었다.

압력을 이겨낸 대표적인 두 가지 사건은 1971년 미국의 월남전 수행을 다룬 국방부 비밀문서의 보도와 72년 시작된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추적보도였다. 그는 이를 통해 세계 언론발전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흥미롭게도 언론계보다 권부(權府)에 있었던 인사들이 오히려 더 이같은 점을 크게 평가한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집권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지난 23일 영결식 조사에서 "포스트는 내가 몸담았던 행정부를 무자비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사주인 그녀와 나는 수십년간 우정을 키워왔다. 이것은 패러독스(역설)다" 고 말했다.

그레이엄은 세계 여성사에서도 우뚝 섰다. 63년 우울증을 앓던 남편이 권총자살한 뒤 포스트의 경영을 맡은 이래 상당기간 동안 신문처럼 영향력 있는 사업과 부(富)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과 관습을 이겨내 미국 역사상 가장 힘있는 여성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미국의 월간 대중잡지 배니티 페어는 97년 10월호에서 그녀를 '세계를 움직이는 65인' 에 선정했다. 여성 여덟 명 가운데 네 명은 여왕이었다.

그의 오랜 친구인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그레이엄은 '남자들의 게임' 이라는 신문사업에서 남자들을 이겨냄으로써 다른 여성들이 금지된 영역에 도전하는 데 큰 용기를 주었다" 고 말했다. 그는 처음 신문경영을 떠맡을 때만 해도 평범한 인간이었다. 결혼 전 신문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지만 신문사와 사회의 권력구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랐던 주부였다.

그레이엄에겐 유머와 친화력이 있었다. 기자들의 회의에 자주 참석했고 직원들의 애경사에 큰 관심을 쏟았다. 그래서 지금도 입맛이 까다로운 편인 기자들에게서 가장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추적했던 밥 우드워드 편집부국장은 "사주의 여유를 보면서 포스트 기자들은 힘을 얻었다" 고 회고했다. 그의 인간적 매력은 미국을 움직이는 유력인사들까지 사로잡았고 이같이 끈끈한 유대는 포스트가 일류지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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