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 와이드] '부채의 고향' 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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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시원한 바람이 그리운 한여름.이럴때 가장 고마운 친구는 부채다.에어컨·선풍기에 밀려나고 있기는 하지만 멋과 풍류의 상징이었던 부채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수박 한쪽 입에 물고 부채를 부치면 더위가 금새 가신다.전통 부채를 만들고 있는 장인(匠人)들을 소개한다.

전북 전주시 인후동 기린초등학교 정문앞 ‘미선공방’.서너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서면 아스팔트를 녹일만큼 뜨겁던 한여름 무더위가 절로 씻겨 나가는 듯하다.

방안에 가득 내걸린 갖가지 모양의 부채에서 금방이라도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나올것만 같다.

“부채 한자루면 무더위뿐 아니라 세상의 티끌과 마음속 먼지까지 멀리 내 쫓을수 있습니다.산수나 신선이 그려진 부채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주인공이 돼 자연속을 노니는 기분도 느낄수 있습니다.”

대나무 살을 종잇장처럼 얇게 오려내느라고 분주하게 손길을 놀리던 엄주원(嚴柱元 ·64)씨는 부채 예찬론을 끝없이 늘어 놓는다.

“선조들에게 부채는 생활 필수품이자 멋과 풍류의 상징이었습니다.조선시대 양반들은 복장을 다 갖췄어도 부채가 있어야 외출을 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은 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닌다’고 말할 정도 였습니다.”

18살때 그의 손재주를 눈여겨 본 친척의 권유로 부채 제작의 길로 들어선 그는 지금까지 46년동안 한눈 팔지 않고 합죽선 만들기 외길을 달려왔다.

눈썰미가 뛰어나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한 덕분에 민속공예품대회서 많은 상을 휩쓸었고 1997년에는 무형문화재 ‘선자장(扇子匠)’으로 지정을 받았다.

엄씨가 부인과 아들 ·며느리 등 네식구와 함께 만드는 합죽선은 일년에 3천∼5천개.이렇게 만들어진 합죽선은 1개에 2만∼4만원씩에 팔려 나간다.

대나무를 구하는 일부터 합죽선 한자루를 뽑아내기까지는 1백여일 동안 1백8번의 손길이 갈만큼 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롭다.

부채의 쓰임새는 한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옛날 양반들은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주인을 청했다고 전해진다.상대방이 웃도리를 벗고 있더라도 그 모습을 보지 않기위한 예의를 차리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사랑하는 연인과 만날 때에도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부채는 여름철 최고의 선물로 꼽혔다.단오절에는 단오선이라 하여 임금이 신하에게 부채를 하사할 정도였다.

명창들에게는 노랫가락을 이끌어 내는 여의봉이 되고 행인들에게는 쏟아지는 햇빛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는 일종의 양산 역할도 한다.

특히 합죽선은 손잡이 부분이 정교해 부채를 잡고 있으면 손바닥의 지압점을 골고루 눌러 건강유지에 도움을 준다.도적을 만날경우 거꾸로 잡으면 쇠뼈를 댄 손잡이 부분이 훌륭한 무기역할을 하기도 한다.

부채는 형태상 납작하게 펴진 부채살에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 모양의 ‘방구부채’와 접었다 폈다하며 외출용으로 많이 쓰이는 ‘쥘부채’로 대별된다.

쥘부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대나무 껍질을 서로 맞붙여 만든 합죽선(合竹扇)이다.

방구부채는 모양에 따라 오엽선 ·파초선 ·연엽선 등으로 구분되며 빛깔·그림에 따라 청선·홍선 ·태극선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태극선은 올림픽이나 국제 세미나 ·관광홍보 이벤트 등 굵직한 국제행사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한국의 얼굴’로 알려져 있다.

98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충익(趙忠翼 ·54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씨는 25년째 태극선 만을 만들고 있는 부채의 명장(名匠).일년에 7만∼10만여 개의 태극선을 만들어 국내외 곳곳으로 내보낸다.

가로 2.6m에 세로 4m나 되는 세계 최대의 부채를 6개월에 걸쳐 만들기도 했고 지름 2.5㎝의 가장 작은 부채도 선보였다.

요즘엔 하나를 만드는데 1∼2개월씩 걸리는 작품부채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1백50여 점의 작품 부채를 만들었습니다.앞으로 3백∼5백여점을 더 만들면 부채박물관을 세울 계획입니다.”

전주에는 부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엄씨 ·조씨 등 선자장 3인을 포함해 10여명이나 된다.

이처럼 전주가 부채의 고향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부채에 사용되는 전주 한지의 질이 어느지역 생산품보다 우수했기 때문이다.

이조실록에 따르면 이조시대 전주감영에 유일하게 선자청(扇子廳)을 두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오늘날 부채는 선풍기에 밀리고 에어컨에 치여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또 밀물듯이 들어오는 값싼 중국 ·동남아산의 거센 도전도 받고 있다.

이들 명장들은 이제 부채를 전통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고급화와 현대적 감각의 채용,공정의 기계화 등이 필수적이 된 것이다.

엄씨는 “요즘 생활의 정취와 멋이 가득 담긴 부채를 어떻게 다시 사람들의 손에 잡히도록 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 합죽선 제작은…

*** 합죽선 제작은…

합죽선은 일제시대에 솜씨좋은 일본인들이 제작방법을 배우려다 포기했다고 전해질만큼 공정이 까다롭고 복잡하다.재료가 되는 대나무는 껍질에 흠이 없고 3∼4년 정도 자란 것이 좋다.다음은 제작 순서.

1.양잿물에 삶은 대나무를 1주동안 말려 노랗게 변하면 다시 하루정도 물에 담갔다 꺼낸다.부드럽게 변한 대나무를 칼로 종이처럼 도려낸다.

2.얇게 도려낸 대살에 민어풀(민어의 부레를 끓인 풀)을 묻혀 긴살과 목살을 붙이는 합죽 작업을 한다.

3.인두를 불에 달궈 합죽선의 갓대인 변죽에 사군자 등 무늬를 그려 넣는다.

4.속살과 변죽을 한데 모아 밑 부분에 구멍을 뚫고 임시로 대못을 박아 놓는다.

5.속살을 한데 모아 왼손으로 잡고 목살을 오목하게 깎는다.가지런히 깎은 뒤 줄 등을 이용해 매끈하게 질을 낸다.

6.속살에 꽃·동물 등 문양을 찍어 넣는 낙죽 작업을 한다.

7.질긴 한지(닥종이)를 다림질해 보푸라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뒤 부채살에 맞도록 접는다.

8.부채 속살부터 풀칠해 하나씩 붙인다.

9.목살을 꽉 묶은 다음 장식을 끼우고 망치로 때려 마무리한다.

10.완성된 합죽선에 그림이나 글씨를 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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