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여사 23일 영결식 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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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3일 오전 열린 캐서린 그레이엄 전 워싱턴 포스트 회장의 장례식은 규모가 크고 장중하긴 해도 특별히 역사적인 것은 아니었다. 내셔널 대성당만 해도 우드로 윌슨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등 주요 인사들의 영결식이 열렸던 곳이다.

그레이엄 영결식의 역사적 가치는 조사(弔辭)에서 비롯했다. 조사를 읽은 사람은 모두 6명.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유명한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워싱턴 포스트 부사장 벤 브래들리, 그리고 유자녀 세명이었다.

한국 언론계에서는 워싱턴 포스트와 제휴관계에 있는 중앙일보의 홍석현(洪錫炫)회장 내외가 참석했다. 洪회장은 전날 그레이엄 여사의 아들 도널드 그레이엄 포스트 회장이 주재한 만찬에서 "그레이엄 여사는 미국의 언론발전에 지워지지 않는 업적을 남겼다" 고 추모했다.

이날 3천3백여 조객(弔客)을 움직인 이는 브래들리였다. 그는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때 주필이었다.

백발의 그는 그레이엄과 함께한 30여년을 유머를 섞어 회고해 나갔다. 그는 그레이엄이 사주(社主)의 의자에서 내려와 얼마나 기자들과 어울렸으며 신문사의 정신을 수호하려 했는지를 얘기했다. 조사가 에피소드를 이어가자 엄숙하던 영결식장 이곳저곳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브래들리는 이렇게 맺었다. "훌륭한 소유주는 기자와 편집인들이 사회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 밝은 빛을 비추도록 도와준다. "

조사가 끝나자 "아멘" 대신 박수가 터졌다. 이날 아침 워싱턴 포스트에는 칼 번스타인과 함께 워터게이트 파문을 파헤친 밥 우드워드 편집부국장이 그레이엄에 대한 글을 실었다.

"워터게이트를 뒤지기 시작한 지 7개월이 됐을 때 그레이엄은 편집국장 하워드 시몬스와 나를 점심에 초대했다. 나는 29세였다.

그레이엄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이 파헤쳐질 것 같으냐' 라고 물었다. 닉슨 정권이 정보를 어떻게 차단하는지를 알고 있던 나는 '풀 스토리가 드러날 것으로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고 답했다. 그레이엄은 '절대라고□ 절대라는 말은 나에게 하지 말라' 고 말했다. "

밥 우드워드는 "그녀의 이 말은 아드레날린(강심제로 사용되는 흥분 호르몬)주사 한방 같았다" 고 표현했다. 그는 "그녀는 워터게이트 보도로 인해 권력이 신문을 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고 덧붙였다.

워터게이트로 추악한 닉슨 권력은 망했고 워싱턴 포스트는 권위지로 성장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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