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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집주인 수해지원금 놓고 갈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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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15일 새벽 집중호우 때 침수 피해를 본 주택에 지원된 수리비를 놓고 세입자와 집주인간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당국이 근본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턱없이 부족한 수리비만 생색내듯 지급해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 노원구 공릉1동에 2층짜리 주택을 갖고 있는 나혜숙(45.여)씨는 이번 호우로 지하층이 몽땅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보았다. 1998년 폭우로 두가구에 임대를 준 지하층이 침수돼 1천여만원을 들여 수리를 했는데 이번에 또 같은 피해를 당했지만 지원금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나씨는 "정부가 직접 피해를 당한 세입자들에게만 수리비를 지급해 각종 배관과 보일러 등을 바꿔줘야 하는 집주인들은 밤잠을 못 이룬다" 며 "세입자들에게 수리비를 내놓으라고 했다간 큰 싸움이 날 게 뻔해 난감하다" 고 말했다.

정부가 침수 주택에 지원하는 법정 수리비는 60만원. 서울의 경우 특별지원금 30만원을 더해 가구당 90만원을 피해 당사자 통장으로 지급하고 있다.

행정자치부 지침에 따르면 침수 주택 수리비는 방바닥이 물에 잠겨 수리를 하지 않고서는 거주하기 힘든 가구에 한해 지원된다. 집주인이 수리를 했을 경우 세입자들과 지원금을 상호 정산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위로금 성격의 수리비를 집주인에게 줄 수 없다는 세입자와 실제 수리를 담당해야 할 집주인간에 다툼이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공릉1동 반지하 주택을 임대해 살고 있는 박아름(42.여)씨는 "자기 통장으로 들어온 수해 지원금을 집주인에게 내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며 "서로 알아서 정산하라는 당국의 방침이 결국 싸움만 부채질하고 있다" 고 비난했다.

공릉동 수해 피해 주민대표 오만탁(50)씨는 "잘 지내던 주민들 사이에 하루에도 수차례씩 마찰이 빚어지고 있지만 당국은 법규정에 따른 조치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같은 갈등 속에서 지난 19일 오전 공릉동 일대 가옥주 80여명은 노원구청에 몰려가 피해 가구에만 지원되는 주택수리비를 자신들에게도 지원해 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세입자들이 방만 보수하고 별도 보일러 시설 등은 모두 가옥주에게 수리해 달라고 하는 만큼 별도의 지원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당장 이사를 가겠다는 세입자가 속출하는 등 경제적 피해가 큰 만큼 침수 대책 마련에 소홀한 당국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주택 소유주에 대한 지원은 법률에 근거가 없어 지원이 불가능하다" 며 "집주인과 세입자들의 갈등이 심각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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