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 디카로 옛 명성 재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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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일본 센다이의 후지필름 ‘파인픽스’ 조립공장에서 종업원들이 셀방식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조립하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강자로 변신에 성공한 기업은 흔치 않다. 체질부터 뼈대까지 완전히 바꾸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 후지필름은 10년 전만 해도 아날로그 필름 시장에서 코닥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룬 전통의 필름 메이커. 코닥은 여전히 아날로그 회사로 제자리 걸음이지만, 후지필름은 사정이 다르다. 이 회사는 1988년 세계 처음으로 디지털 카메라 개발에 성공한 이후 디지털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달 28~29일 찾은 일본 센다이(仙台)의 '파인픽스' 조립공장. 후지필름의 디지털 카메라를 생산하는 이 자회사는 지난해 620만대, 올해는 최대 1000만대의 디카를 생산해 세계 270개국에 판매하고 있다. 360명이 일하는 이 공장에는 5명 정도가 한 조가 돼 주요 부품을 조립하는 셀(cell) 방식으로 하루 600여대의 디카를 만들고 있었다. 셀 방식은 후지필름이 처음 도입한 공정인데, 지금은 캐논 등 디지털 기기를 만드는 일본 업체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다. 공장 관계자는 "고부가가치의 디지털 정밀 부품을 조립하려면 숙련된 기능공들이 소수의 그룹을 이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셀 방식을 설명했다.

같은 회사지만 바로 옆 마이크로 디바이스 공장은 분위기부터 전혀 달랐다. 모든 과정이 클린 룸에서 이뤄지는 반도체 공장이나 다름없었다. 이 공장의 하라 히토시 대표는 "디지털 카메라의 필름이라 할 수 있는 CCD(고체촬영소자)를 만들고 있다"면서 "다른 회사와 달리 독자적으로 개발한 벌집 모양의 팔각형 CCD는 해상도와 감도가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디지털로 변신해도 후지필름은 자신의 뿌리는 잊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주력이었던 사진영상 기술을 디지털화 시대에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후지필름 측은 "다른 업체들이 디카 화소수 경쟁을 벌이는 동안 우리는 인화를 했을 때 얼마나 자연스러운 색상이 나오는지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관련 시장을 개척할 때에도 한 우물을 파는 것이 후지필름의 특징이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사진 영상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디지털 인화기.프린터.의료영상 시장에서부터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후지필름 포토닉스 공장의 세키하라 요우지 대표는 후지필름의 특징을 "CCD를 비롯해 컬러필터.렌즈.이미지 처리 등 모든 기술을 한 브랜드 내에서 총 망라해 자체 생산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10년 넘게 장기 불황의 몸살을 앓았지만 후지필름은 이에 아랑곳없이 매출액이 매년 늘고 있다. 특히 캐논.올림푸스.엡슨 등과 함께 외국인 투자자의 4대 매수 타깃으로 부각되면서 주가도 급등했다.

지난해 창립 70주년을 맞은 후지필름은 5년 후를 대비한 '비전 75'를 선포했다. 여기에서 '새로운 성장 전략의 구축''경영 전반에 걸친 철저한 구조개혁''시너지 강화' 등이 기본 전략으로 채택됐다. 한마디로 2008년까지 완벽한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것이다. 2008년 경영목표는 3조5000억엔(약 38조원)의 매출액과 10%의 영업이익률, 세계 디카 시장 점유율 3위 진입이다. 후지필름 관계자는 "2004년은 세계적으로 판매량에서 디지털 카메라가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역전시키는 첫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김혜성 조인스닷컴 기자

*** 에가미 해외영업본부장

70년 노하우 살려 화소보다 화질 승부

"아날로그 시대에 후지필름이 누린 영광을 디지털 세계에도 재현하기 위해 모두 디지털 마인드로 단단히 무장했습니다."

일본 도쿄 롯폰기 후지필름 본사에서 만난 해외영업본부 에가미 야스히로(江上泰裕) 본부장은 '디지털 후지필름'을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시장에 대한 평가는.

"한국의 디카 시장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크다. 내년에는 모든 기능을 한국말로 설명하는 한국형 제품을 내놓아 한국 시장에서 3위 안에 들겠다. 후지필름은 올해 한국 디카 시장에서 15만대를 팔아 10%를 점유, 업계 5위권이다."

-후지필름의 디지털 카메라 경쟁력은 어디에 있는가.

"'몇백만 화소'라는 기능성 디카 시장에서 화소 대신 화질로 승부했다. 즉 인쇄를 했을 때 얼마나 자연스러운 색상을 낼 수 있느냐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후지필름은 과거 70년간 쌓아온 사진영상 노하우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디카에서도 자연스러운 색상을 내는 데 주력했다."

-후지필름 디지털카메라만의 독특한 기술은 무엇인가.

"기존 디카 제조업체들은 정사각형 스타일의 화소를 쓰고 있다. 이에 비해 후지필름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벌집 모양의 화소(하니컴CCD)를 디카에 달아 화질이 훨씬 자연스럽다."

-세계 디카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 끝까지 생존할 수 있겠는가.

"단순히 디지털 카메라뿐 아니라 관련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디카 인화시장의 65%를 후지필름이 차지했다. 디카와 카메라폰의 전문 인화서비스 현상소인 'FDi 스테이션'과 디카 전문 인화 자동판매기인 '프린차오'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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