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1인2표' 손익계산 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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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역구와 전국구 의원을 '1인1투표' 방식으로 뽑는데 대해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걸었다.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를 지지하지만 소속 정당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고, 그 반대의 사례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야는 17대 총선(2004년 4월)까지 어떤 형태로든 헌재의 결정을 선거법에 반영해야 한다. 헌재 결정대로라면 유권자들은 지지 후보와 지지 정당을 별도로 찍는 '1인2투표' 를 해야 한다.

◇ 민주 '환영' , 한나라.자민련 '떨떠름' =민주당은 "국회는 헌재 판결을 수용하는 선거법 개정을 추진해야 할 것" (田溶鶴대변인)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당혹스런 표정이었다.

한나라당은 "헌재가 오랜 정치 관행과 정치문화 등 현실적 측면을 좀더 고려했어야 했다" (權哲賢 대변인), "1인1투표제라고 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현저히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安商守의원)고 지적했다.

자민련 이양희(李良熙)사무총장은 "헌재 결정을 존중하겠으나 수긍할 수 없는 대목이 많다. 정치현실과 투표행태를 외면한 결정" 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여야 3당은 "앞으로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고 다짐했다.

◇ 여야의 이해득실= '1인2투표제' 가 실시될 경우 유권자들의 투표행태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소정당은 원내 진출이 손쉬워질 전망이다. 민주노동당측은 "5% 안팎의 지지율이면 3~6석의 의석이 가능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내년 대선에서 17대 총선을 겨냥한 군소정당 후보가 상당수 출현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1인2투표제' 는 1999년 말 선거법 협상 때 지역구 조정 문제와 함께 최대 쟁점이 됐다.

여야 총무들이 '전국 단위의 비례대표를 1인2투표제로 선출한다' 고 잠정 합의했으나 야당 지도부의 반대로 실패한 바 있다.

민주당은 지역감정 완화와 2여 연합공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박상천(朴相千)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은 "독일의 경우 정당.후보를 따로 찍는 투표경향이 15% 정도로 추정되나 우리는 30% 가량 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 경우 민주당은 현재 한 석도 없는 영남에서 비례대표 당선자를 낼 수 있다. 물론 한나라당도 호남에서 의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자민련은 충청권의 기반이 무너질 것을 걱정했다. 당 관계자는 "충청지역에서 자민련에 대한 정당 지지도가 낮아 정당.후보를 따로 투표할 경우 의석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고 우려했다.

한나라당은 호남지역에서 얻을 비례대표 의석보다 영남에서 잃을 의석이 많다는 판단이다. 또 군소정당 난립과 야권 분열의 가능성도 작지 않다.

한 당직자는 "그러나 내년 대선에서 우리 당이 이길 경우 1인2투표제가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고 기대했다.

◇ 정치적 파장=보스 중심의 양당(兩黨)정치와 지역대결 구도에 변화의 바람이 예상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유권자들이 마음에 안드는 후보를 억지로 찍는 행태를 상당히 완화시킬 것" 이라고 말했다.

후보의 인물됨과 정당의 정책을 분리해 투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인2투표제' 가 지역대결 구도를 더욱 굳힐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국회 관계자는 "유권자들이 후보.정당을 똑같이 투표하면 오히려 지역감정의 벽이 더 높아지지 않겠느냐" 고 걱정했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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