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기행] 오골계 마을 논산 화악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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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계룡산 자락에 자리잡은 충남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이승숙(李承淑 ·39 ·여)씨 집 계사(鷄舍).

“얘들아 이리온”하고 어린아이를 부르듯 李씨가 외쳐대자 온몸이 새까만 닭 수백마리가 우르르 몰려든다.

1980년 천연기념물 2백65호로 지정된 오골계(烏骨鷄)들이다.

전국에 오골계를 키우는 농가나 요리로 만들어 파는 식당은 몇몇 있지만 순수 혈통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을 기르는 곳은 화악리뿐이다.

그래서인지 화악리는 ‘오골계 마을’로 통한다.충남도도 87년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이곳을 ‘오골계마을’로 공식 지정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벼슬과 깃털·눈동자는 물론 뼈까지 온통 검은 색을 띠고 있는 오골계는 계룡산의 물과 흙을 먹고 자라야 ‘진짜’가 된다고 믿고 있다.

오골계가 전국적인 명성을 갖게 되기까지는 전주 이씨(李氏)집성촌인 이곳 사람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특히 이 마을의 오골계 보존사업의 중심 역할을 해온 이내진(李來璡 ·78)씨 일가의 5대에 걸친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李씨 집안이 오골계 보호에 나선 것은 갑자기 병을 얻은 조선시대 철종이 화약리 오골계를 복용하고 건강을 회복한 뒤부터로 전해진다.

오골계가 일반 닭보다 훨씬 뛰어난 약효가 있다고 믿는 李씨 집안 사람들은 대물림으로 오골계의 혈통을 지켜고 있다.내진씨는 6.25전쟁 당시에도 계룡산 깊은 곳으로 오골계를 피신시켜 단종 위기를 넘겼다.

이같은 노력 등에 힘을 입어 현재 내진씨의 1천여평 계사에는 2만여마리가 자라고 있다.

20여년전만해도 이 마을 대부분 농가에서는 오골계를 수십마리씩 길렀었다.그러나 수익성이 떨어져 대부분 포기하고 현재는 10여 농가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골계는 기르기도 힘들고 번식률도 낮다.양계장 닭은 1년이면 3백여개 알을 낳지만 오골계는 1백개 정도만 낳는다.

일반 닭은 두달 정도 자라면 알을 낳기 시작하지만 오골계는 6개월 이상 자라야 산란이 가능하다.사람이 만지거나 낯선 사람만 봐도 모이를 잘 먹지 않을 정도로 예민하다.

오골계는 고기 맛이 달고 신장과 간을 보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동의보감에 기록돼 있다.

내진씨는 몇년전부터 건강이 나빠져 오골계 관리를 막내 딸 승숙씨에게 맡겼다.10년간 중앙일간지 기자를 하던 승숙씨는 2년전 직장을 아예 그만두고 오골계 육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오골계 홈페이지(http://www.ogolgye.com)까지 만들어 오골계마을 홍보활동도 벌인다.

李씨 집안 사람들은 오골계 보호사업에 쓰일 자금을 마련하고 늘어나는 오골계를 처리하기 위해 92년부터 오골계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오골계 황기탕 ·백숙 등을 손님들에게 내놓는다.여름철에는 한달에 4백여마리(마리당 2만5천원)나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사육에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 식당 수익금을 몽땅 털어넣어도 한달에 3백만원에 가까운 적자가 나고 있다.

승숙씨는 “천연기념물인 오골계를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며 “힘은 들지만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041-736-0707.

논산=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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