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정부·국민 "서방측에 속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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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을 옛유고전범국제재판소(ICTY)에 넘긴 유고 정부와 국민이 서방측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서방측이 밀로셰비치를 전범 법정에 세운 이후 당초 약속했던 경제지원과 관련, 딴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밀로셰비치를 전격 인도한 조란 진지치 세르비아 총리는 16일자 슈피겔지와의 회견에서 "서방의 경제지원이란 소극(笑劇)에 충격을 받았다" 며 유럽연합(EU)을 비난할 지경까지 됐다. 진지치가 국내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밀로셰비치를 인도한 것은 전적으로 서방의 경제지원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서방측도 밀로셰비치 인도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올해 안으로 약 13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그 가운데 첫 지원분 3억유로가 오는 8월 지원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EU측은 최근 지원금 가운데 2억2천5백만유로를 즉각 유럽투자은행(EIB)에 재송금, 서방측에서 빌린 돈을 갚으라고 유고에 통고했다.

이는 티토 정권 때부터 EIB에서 빌린 외채와 이자로, 이 가운데 75%는 밀로셰비치가 지난 10년간 외채상환을 거부한 데 대한 벌금성 이자다. 게다가 9월까지가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인데도 나머지 7천5백만유로는 오는 11월에 가서야 지원된다.

여기다 지원 대가로 유고에 초긴축재정과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어 실업률이 50%를 넘는 상황에서 추가로 10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을 판이다.

이렇게 되자 진지치의 인기는 곤두박질치고 밀로셰비치 인도에 반대해 온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대통령 등 보수파와 구 공산당 계열 좌파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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