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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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35. 가족과의 '환속전쟁'

행자 시절 하루는 성철스님이 마당을 거닐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놈아, 니 여기 온 지 몇 개월 됐노?"

"대략 서너달은 된 것 같심더. "

큰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마디 보탰다.

"니도 너거 집에서 어지간히 귀찮아했던 놈인가 보제. "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어리둥절해 하는데, 큰스님이 설명을 해주었다.

"아니, 아들이 출가했으면 니 애비, 에미가 아들이 죽었는가 살았는가 찾아나서야제! 지금까지도 찾아나선 흔적이 없으니 니도 어지간히 부모 속내를 끓이다가 온 놈 아이가. "

"아닙니다. 저는 백련암 간다고 얘기 다 하고 왔심더. "

기죽기 싫어 대꾸를 했는데, 큰스님은 딴소리다.

"니 애비, 에미가 중 된 줄 알면 기절초풍하겠제?"

그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큰스님의 말씀대로 행자 시절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하는 일이 가족과의 만남이다. 출가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러나 피하고 싶은 홍역과 같은 일이다.

가야산 깊은 암자에 있으면 세상 누구도 못 찾아올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수소문해서 용하게들 찾아온다. 귀한 아들이 삭발하여 행자가 된 모습을 보고 많은 어머니들은 졸도한다. 가족, 특히 어머니의 낙담은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가족이 찾아오면 행자는 대부분 산으로 줄행랑 놓아 '위기' 를 모면한다. 어머니 손에 붙잡히면 손아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어머니들은 일단 "내 아들 찾아내라" 며 버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산 속으로 도망간 행자보다 찾아온 가족들이 먼저 항복하기 마련이다. 자기들 때문에 밥 쫄쫄 굶고 산 속을 헤맬 행자를 생각하면 그 또한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암자를 떠나는 어머니의 당부도 대부분 비슷하다.

"오늘은 이만 돌아갑니다. 무사히 있는 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스님들이 좀 잘 돌봐주십시오. "

뒷산 어딘가에 숨어 있던 행자는 가족들이 하산하는 모습을 먼발치로 확인하고선 내려온다. 출가하고 가족이 수소문해 찾아오기까지 보통 두어달 정도 걸린다. 첫만남을 피했다고 그냥 끝나지는 않는다. 처음에 돌아갔던 가족은 다시 오게 마련인데, 마냥 피할 수만은 없다.

무작정 손을 끌고 내려가려는 가족을 설득해 돌려보내는 것도 쉽지는 않다. 특히 누이도 아닌 젊은 여자가 펑펑 울어대 난감해하던 행자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경우 환속하는 확률이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성철스님이다. 결혼하고 나서 출가한 스님은 어머니와 아내, 강보에 싸인 어린 딸까지 찾아와 도망다니곤 했다.

결국 큰스님의 설득에 따님(불필스님)까지 출가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마음이 어지러웠겠는가. 이후에도 평생을 산사에서 살면서 행자와 가족의 한바탕 승강이를 흔치않게 보아온 큰스님이다.

가족과의 한바탕 소동이 있던 날이면 큰스님은 저녁 예불 마치고 큰방에 들러 한마디 했다. 가족을 따라가지 않은 경우엔 "야, 오늘 전쟁 볼 만하데. 이놈아, 따라가지 왜 여기 앉아 있어. 안 그러나□" 하며 대단한 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다.

기어이 행자가 끌려간 날 저녁이면 "그 자슥, 보기는 멀쩡한데 그렇게 강단이 없어. 불알을 어디 떼버린 모양이제. 그래 갖고 세상 나가서 우째 살라 하는고" 하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록 혼자말로 "괜찮은 놈인데…" 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나의 경우엔 큰스님이 직접 나서 어머니를 꾸짖는 바람에 어렵지 않게 가족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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