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와히드…점심초대한 정계대표 한명도 안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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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정치적 고립이 최고조에 달했다.

와히드는 자신의 탄핵 여부를 결정지을 국민협의회(MPR) 특별총회 소집(8월 1일)을 앞두고 마지막 정치적 협상을 위해 9일 각 정당 대표들을 자카르타 외곽 대통령 별장인 보고르궁으로 점심초대했으나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온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바람을 맞았으니 망신을 톡톡히 당한 셈이다.

처음부터 불참 의사를 밝힌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은 물론 막판 정치적 타협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참석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던 골카르당 악바르 탄중 당수와 통일개발당 함자 하스 당수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탄중 당수는 불과 약속시간 1시간 전에 전화로 불참을 통고했고 아미엔 라이스 MPR의장.유스릴 이자 마헨드라 월성당 당수 등은 사전통고 없이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분풀이라도 하듯 와히드는 혼자 점심을 먹은 후 기자회견을 열어 "20일까지 의회(DPR)가 탄핵절차를 중단하지 않으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한 뒤 12개월 안에 총선을 실시하겠다" 고 위협했다.

와히드의 비상사태 선포 위협은 이미 여러번 제기된 것이지만 마감시한을 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와히드는 20일을 택한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와히드의 비상사태 선포 위협 때마다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던 군부는 다시 한번 엄정 중립을 선언해 와히드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했다.

엔드리아르토노 수타르토 육군참모총장은 9일 "육군은 MPR 특별총회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을 것" 이며 "총회 결과를 수용할 것" 이라고 밝혔다.

탄핵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총회 결과 수용을 천명한 것은 곧 와히드에게 등을 돌린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비상사태 선포는 또다시 헛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당초 점심초대는 7일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탄핵의 열쇠를 쥐고 있는 메가와티가 건강검진을 핑계로 싱가포르로 떠나버리자 와히드는 약속을 9일로 연기했다.

와히드가 이처럼 메가와티와의 만남에 목말라하는 동안 메가와티는 각료회의까지 불참하며 와히드와의 대면을 피하고 있다.

이날 회동에 대해서도 메가와티측은 "명확한 의제가 없는데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 며 시종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안혜리 기자.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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