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라에 '일상의 나'가 부서진다…인제 내린천 래프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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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인 인제 '내린천' 은 강원도 홍천군 '내' 면과 인제군 기 '린' 면을 따라 흐른다 해서 한 글자씩을 따 이름이 붙여졌다. 굽이굽이마다 기암괴석이 위용을 자랑하고 물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졌지만 햇볕은 여전히 따갑다. 출발지인 원대교에서 안전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보트를 내리고 살갗이 아리도록 찬 물에 몸을 적신다. 상쾌한 기분은 잠시 뿐, 추위와 긴장감에 몸이 떨린다.

다섯명이 고무보트에 올라탄다. 느릿한 여울을 지나 '아기장수' 의 전설이 서린 장수터에 닿자 물살이 갑자기 빨라진다. "옛날 마흔이 넘어 천하장사를 낳은 한 부부가 힘이 센 아이는 다섯살이 되기 전에 부모를 죽인다는 소리를 듣고 그 아기를 죽였더니 저기에 우물이 생겨 장수터라 부른다" 는 가이드의 설명은 노를 젓느라 바쁜 나머지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물이 사방에서 튀어 오르고 거센 물결에 보트가 흔들린다. 금방이라도 보트가 뒤집힐 것만 같다. 힘껏 노를 젓다 보니 제법 잘 떠내려간다. 그래도 노젓기가 미숙해 여러번 바위에 부딪치자 가이드가 호통을 친다.

보트를 이리저리 휘몰던 급류는 명주소에 이르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잠잠해진다. 여러 모양새를 가진 바위들이 절경을 연출한다. 가이드가 비상 훈련을 시킨다며 보트를 뒤집어 물속에 빠뜨린다. 한바탕 자맥질로 땀을 식히고 물장난도 쳐본다. 뒤집어진 보트를 바로 하고 다시 올라 여정을 계속한다.

명주소가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급류를 만난다. 급류는 그리 길지 않아 모두들 한숨을 돌린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 "이게 다야" 는 소리도 피아시 계곡에 들어서자 잦아든다. 7백m에 이르는 피아시 계곡은 국내에서 제일 험난한, 급류로 유명한 코스다.

가이드는 "정신 바짝 차리고 구령에 맞춰 노를 저어라" 며 목소리를 높인다. 물살을 헤쳐나가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다해 노를 젓는다. 여기저기서 들이치는 물결로 보트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밀려드는 물보라 때문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어 내린천에서 제일 빼어나다는 계곡의 절경은 보이지 않는다. 짜릿하다 못해 몸서리까지 나는 순간이다.

팔이 아픈 것도 잊은 채 필사적으로 노를 젓다 보면 계곡을 벗어나 다시 잔잔한 '냉동탕' 에 도달한다. 노젓느라 아린 팔을 얼음보다 찬 물에 잠시 담가 달래본다.

밤골의 마지막 급류는 자신감도 붙었고 노젓기도 익숙해져 급류로 여겨지지 않는다. 고사리에 보트가 머물자 드디어 원대교에서 시작된 6㎞, 2시간 30여분의 모험은 끝이 난다.

래프팅을 처음 해봤다는 박종범(30.회사원)씨는 피아시 계곡의 아찔했던 순간을 금세 잊은듯 "래프팅의 재미에 푹 빠졌다.

들이치는 물살과 짜릿함으로 더위가 싹 가셨다" 고 말했다. 1992년부터 내린천에서 래프팅 보급에 나선 송강카누학교 정미경 사장은 "내린천은 물이 맑고 물살이 빨라 국내에서 제일가는 래프팅 장소" 라고 자랑했다.

인제〓이철재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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