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해외 한국 배낭여행객 '나라망신' 추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지난 1일 스위스 관광도시 루체른의 한 캠핑장.

밤이 깊어지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세계 각국의 젊은이 2백여명이 하나둘 텐트로 돌아갔다.

그러나 10여명의 한국인 배낭족들은 '오후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든다' 는 자체 규정을 무시한 채 잔디밭에 둘러앉아 한국에서 가져온 듯한 팩소주와 양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계속 술잔을 돌렸다. 취기가 돌자 목소리가 커지더니 급기야는 고래고래 합창까지 터져나왔다.

다른 나라 여행객들의 잇따른 항의, 그리고 40대 캠핑장 관리인의 몇차례 주의도 무시한 채 계속된 소란스러운 술판은 오전 3시쯤에야 끝났다.

부근에서 야영한 鄭모(32.자영업)씨는 "방해가 되니 자제해 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오히려 '당신은 한국사람 아니야?' 라고 화를 냈다" 며 "시끄럽고 창피해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며 얼굴을 붉혔다.

여름 휴가.방학을 맞아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가운데 공공장소에서 일탈과 추태를 벌이는 사례가 적지않아 '어글리 코리안' 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 거슬리는 여행 매너= "기차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열차의 6인용 좌석에 짐을 잔뜩 쌓아두거나 길게 누운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 배낭객이더군요. "

유럽을 배낭여행 중인 여대생 李모(24)씨는 "국내에서는 그러려니 생각했던 공공장소에서의 무질서가 외국에 나와보니 눈에 매우 거슬렸다" 며 "나라 체면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자세가 아쉽다" 고 말했다.

파리에서 3년째 유학 중인 金모(35)씨도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을 거리낌없이 하는 한국 사람 때문에 휴가철엔 여행하고 싶지 않을 정도" 라고 말했다.

◇ 화장실에서 머리 감기=지난 3일 파리 근교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승합차에서 내린 한국인 배낭여행객 10여명이 우르르 화장실로 몰려들었다.

이어 세면대에 철철 넘치도록 물을 틀고 일부는 머리까지 감았다. 손을 씻으려는 현지인 및 외국인 관광객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5분 넘게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화장실 바로 옆에 15프랑(약 1천8백원)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샤워장이 있었지만 이들은 여행 경비를 아끼기 위해 화장실 세면대를 이용한 것. 휴게실 직원이 샤워실을 가리키며 "목욕하는 곳은 저기다" 라고 했으나 이들은 "익스큐스 미" 한마디로 받아넘겼다.

◇ 때.장소 안가리는 술판=현지인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추태는 때.장소를 가리지 않는 술판이었다.

프랑스 파리 불로뉴 숲 캠핑장의 현지인 관리인은 "한국인 여행객들이 유독 밤늦게까지 술마시고 소란을 피우는 일이 많은 편" 이라고 말했다.

파리 교민 張모(41)씨는 "외국인들도 찾는 한국식당에서 술에 취해 고성방가하는 여행객이 흔하다" 며 혀를 찼다.

파리=전진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