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아! 정봉수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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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1992년 2월 2일 일본 규슈의 동부 해안도시 오이타 시립운동장.

당시 코오롱 마라톤팀 황영조 선수가 오이타~벳푸 국제마라톤에서 세계수준인 2시간8분47초의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2위로 골인하자 '독사' 라고 불리던 정봉수 감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곧바로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에게 "해냈습니다" 라고 보고하는 그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정감독은 91년 여름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 마라톤을 제패한 황영조에게 가능성을 발견하고 경험을 쌓도록 출전시킨 터였다. 필자가 레이스 전날 일본으로 건너갔더니 황영조는 찰밥을 김에 싸서 덤덤하게 먹고 있었다.

식사가 빈약해 보였다. 정감독은 "식이요법이에요. 마지막 단계입니다" 라고 설명해 주었다. 선수의 몸을 가볍게 하면서도 체질을 최대한 끈질기게 만드는 그만의 마라톤 선수 체질 개선법이었다.

단거리 출신인 정감독은 군에 몸을 담으면서 장거리에 치중하게 됐다. 재일동포 친척을 통해 일본 육상계를 찾아 선진 이론을 배워 자신의 선수 양성법으로 소화해냈다.

정감독은 한국 마라톤 중흥에 정열을 기울인 이동찬 명예회장의 부름을 받아 87년 코오롱 마라톤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황영조가 입단하자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뒤 황영조는 훈련 과정을 회고하며 "하도 괴로워 지나가는 트럭에 깔려 죽고 싶었다" 고 털어놓았다. 정감독은 선수들이 그토록 힘든 훈련을 이겨내도록 하는 지도력을 갖고 있었다.

정감독은 황영조에 이어 이봉주를 대성시켰고 권은주를 발굴해 유망주로 키워나갔다. 정감독의 만년의 야심은 한국 여자마라톤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99년 이봉주.김이용 등이 팀을 탈퇴했을 때 "권은주만은 건지고 싶었다" 며 아쉬워하던 그의 표정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뇨병 병발증으로 신부전증이 악화되는 그의 모습은 지켜보기에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마라톤에 대한 정열은 식지 않아 신진을 키우면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겨냥하는 그의 투지를 보고 몇해는 버틸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으니 무어라 추념의 말을 보태야 할지 모르겠다. 회한은 크겠으나 사바(娑婆)의 번거로웠던 일은 잊고 편히 잠들기를 바랄 뿐이다.

조동표 <스포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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