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고발 여야 긴급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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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세청의 언론사및 사주(社主)고발 사태를 맞아 여야는

“정당한 조세행정 차원”“언론탄압 ·정권재창출 음모”라고 주장하며 거칠게 맞서 있다.

본지는 1일 이 문제를 앞장서서 다루고 있는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과 박관용(朴寬用)한나라당 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특위 위원장의 대담(對談)을 마련했다.

◇ "언론사 세무조사로 국론 분열"

▶김근태=직설적으로 말해 언론은 '마지막 성역(聖域)' 이다. 성역을 법과 원칙에 따라 세무조사하는 과정에서 언론사들이 반발해 소동이 일고 있다. 국론 분열이 발생하고 있고 언론사들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세무조사로 언론사가 투명해지면 보다 높은 수준의 감시기능을 발휘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박관용=이렇게 국론이 분열된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다. 방송과 언론, 언론과 언론이 갈등을 빚고 있다. 이게 누구 책임인가. 적법을 가장해 권력을 남용한 정부의 책임이다. 세무사찰을 '조세 정의(正義)' 나 기업 투명성 차원으로 보는 것은 본질을 외면한 것이다. 조사 시기나 과정을 볼 때 언론장악 의도로 단정할 수밖에 없다.

▶金=세무조사를 '재집권 의도'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차기 대선까지는 1년6개월이나 남았다. 우리가 한나라당에 가깝다는 언론들이 세무조사 후 정서적으로 한나라당에 더욱 가까워지리라는 것을 계산 못할 바보는 아니다. 언론사 조사가 언론 탄압이면 기업 세무조사는 기업 탄압이고, 개인 세무조사는 개인 말살이란 말인가. 언론은 '제4부(府)' 이고 사회의 목탁이지만 스스로가 권력이어선 안된다. 언론도 견제나 감시를 받아야 한다.

▶朴=그런 논리를 갖고 있다니 놀랍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자. 1999년 10월에 이른바 '언론 장악 문건' 이 발견됐다. 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이 언론 개혁에 대해 몇차례 언급했고, 공영 TV의 대대적인 관련 보도와 국세청.공정위의 조사 착수가 잇따랐다. 언론 문건에 나온 그대로 아닌가. 5년마다 하는 정상적인 세무조사라면 왜 99년에 안했나.

▶金=99년은 IMF 극복에 집중할 시기였다. 그때 했다면 '총선(2000년)을 겨냥한 언론 탄압' 이란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보다 '탈세와 비리를 비호할 생각은 없다' 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말이 단순한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朴=IMF 극복 때문에 99년에 조사하지 않았다는데, 그러면 교사들을 학교에서 쫓아내고 의료보험 파동을 일으킨 엄청난 '개혁' 들은 IMF와 관계가 없었나. 비유가 잘못됐다. 우리는 분명히 탈세나 비리를 비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무조사 자체는 정당한 행정행위라도, 그것이 언론 자유를 침해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면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계획된 언론 탄압 구도 하에 시행된 조사이기에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94년 조사 공개 논란

▶金=이른 바 '음모론' 을 들을 때마다 나는 좌절감을 느낀다. 솔직히 말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은 둘 다 국가경영 능력에 문제가 있다. 예전에 안기부 같은 곳에서 맡았던 조정기능을 할 수 있는 주체가 지금은 대통령뿐이다. 사전 계획된 음모에 따른 세무조사라는 주장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 나는 94년 (김영삼 정부의)세무조사도 잘했다고 본다.

당시 정부가 일관성있게 밀고 나갔더라면 결과적으로 언론의 위상이 높아졌을 것이고, 지금 같은 정쟁도 없었을 것이다. 朴위원장은 그때 정부 고위직(청와대 비서실장)에 있지 않았나.

▶朴=분명히 밝히건대 나는 94년 세무조사에 대해 전혀 몰랐고, 나중에야 얘기를 들었다. 다른 '팀' 이 있었던 듯하다. 나는 언론 개혁의 방법으로 ABC(신문.잡지 발행부수공사기구)제도 시행과 언론사 사주 재산 공개를 주장했었고, 지금도 그 소신에 변함없다.

언론사가 과거에 잘못을 많이 저질렀지만 기여한 점도 많다는 것을 부정해선 안된다. 나는 야당 생활을 오래 했고, 방송 시청료 거부운동을 하느라 거리에서 최루탄도 마셨다. 金위원은 옥고도 치른 분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우리가 언론 자유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언론 자유는 세무조사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가.

▶金=그럼 지금 밝혀진 탈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94년 세무조사는 정당한 국가행정이었나, 아니면 언론 탄압이었나.

▶朴=탈세 문제는 앞으로 재판 결과에 따르면 된다. 94년 세무조사에 대해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언론 탄압' 이라 주장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 어떤 군사정권보다 악랄하고 집요하다' 고까지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무조사는 어떻게 다른가.

▶金=金대통령의 94년 발언의 진짜 취지는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정권과 언론이)거래하지 말라' 는 것이었다. 다만, 당시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은 정치공세였다고 생각한다.

◇ 빅3 집중은 뭔가

▶朴〓엄청난 추징금을 물고 살아남을 언론사는 몇개 안된다. 정부가 정말 조세 정의 실현을 위해 법을 평등하게 적용했다고 믿나. 일요일에 회사 승용차를 이용한 것까지 세금을 물렸다. 협찬금 등 과세 대상이 숱한 방송사는 왜 고발하지 않았는가. 조세 정의 실현은 허울에 불과하다.

▶金=유력 언론들의 지면을 보면 아무리 변론권(辯論權)이 있다지만, 사고(社告)나 사설은 물론 뉴스.해설면까지 자사 변호로 채우고 있다. 언론 자유가 아니라 일탈이다. 정치권의 1인 보스 지배도 문제지만 언론사도 사주들이 황제적 지배를 하고 있다고 본다. 유력 언론들이 사설을 쓰면 이를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가 받고, 언론들이 다시 1면 톱 기사로 받는 '순환' 이 이뤄지고 있다.

▶朴=언론은 세상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요즘 어딜 가나 세무조사 얘기가 화제다. 당연히 야당인 우리도 조사의 의도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이상한 구도라거나 언론과의 유착이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 얘기다.

▶金=이른바 '빅3(중앙.동아.조선)' 에 추징액이 집중됐고 방송사는 빠졌다고 해서 재집권 음모.김정일 답방추진.레임덕 방지 등을 말하는데, 참 답답하다. 빅3가 신문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문제를 많이 안고 있으니까 세무당국 발표도 그들에 집중된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도 빅3가 집권당에 비판적이었을 뿐이다.

▶朴=기본적으로 시장경쟁 원리에 따라야 한다. 빅3의 시장 점유율이 70%라 해서 왜 권력이 나서나.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잊어선 안된다.

▶金=거의 모든 여론이 세무조사를 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가 있다' 는 여론도 있다. 당국이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과정과 절차를 차질없이 신뢰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정리=최익재.김정하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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