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일본 신당 ‘간판’으로 떠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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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파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77·사진) 도쿄도 지사가 일본 정치권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망언의 대가’로 유명한 그가 자민당을 탈당한 정치인들이 만드는 신당의 정신적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간 ‘찻잔 속 태풍’으로 여겨졌던 신당 출범이 이시하라의 등장으로 상당한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시하라는 5일 신당 준비 모임에 전격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최근 자민당을 탈당한 요사노 가오루(與謝野馨·71) 전 재무상과 무소속의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70) 전 경제산업상 등 자민당 출신 중진 의원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10일 공식 회견을 열고 신당 창당을 선언하기로 했다. 이시하라는 신당 강령에 소비세 인상, 헌법 개정, 미·일 동맹 강화, 대북 압박 강화 등 기존 정당들이 눈치 보던 사안들을 과감하게 포함시킬 것을 주문했다.

그는 앞서 4일에는 민방 TV에 출연해 “내가 신당의 치어리더가 되겠다”며 신당 출범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 같은 그의 행보는 즉각 그의 참의원 출마설로 이어지고 있다. 자민당은 7월 초 참의원 의석의 절반(121석)을 교체하는 선거를 통해 지난해 8월 총선 패배의 설욕을 기대하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의 정책 혼선으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민주당도 정국 장악을 위해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신당이 출범하게 됐지만 구성원들이 모두 자민당 출신이어서 ‘자민당의 2중대’로 불리는 등 신당은 정치권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시하라의 등장은 이런 분위기를 일거에 바꿔놓고 있다. 신당이 이시하라를 참의원 선거의 ‘간판 후보’로 내세우는 방안까지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폭발력을 갖고 있는 이시하라를 내세워 신당 바람을 일으켜보자는 것이다. 인기 소설가로 명성을 떨친 이시하라는 중의원 의원을 지낸 뒤 1999년 도쿄도 지사에 선출됐다. 그는 민족차별적 발언을 계속하는가 하면 일본의 재무장 등 보수층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려왔다.

90년대 버블경제 붕괴 후 장기 불황을 거치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일본인들에게 강한 대리만족을 안겨주었다. 2001년 중학교 역사교과서 파문 때는 우익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지원하기도 했다. 상식을 벗어난 망언으로 파문을 일으켰지만 대중적인 폭발력 때문에 2007년 4월 여유 있게 3선에 성공했다. 그간 이시하라는 “한국민들이 원해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했다”거나 “북한은 중국이 흡수하면 된다”는 등의 막말을 쏟아놓았다.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면 이시하라는 지사 직을 사임해야 한다. 그는 아직 사임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적은 없다. 잔여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데다 지난해 7월 민주당이 도쿄도의회를 장악하면서 지사로서 리더십 발휘가 어렵게 돼 그가 지사 직을 그만두고 출마를 선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출마하게 되면 신당의 비례대표 또는 도쿄 선거구에서 나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92) 전 총리,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83) 요미우리(讀賣)신문그룹 회장 등 거물급 보수 인사들도 신당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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