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새영화] 로맨틱 코미디 '타인의 취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중소기업 사장 카스텔라(장 피에르 바크리). 천박하고 교양이 부족한 탓에 아내에게 늘 구박을 받는다.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지적인 연극배우 클라라(안느 알바로). 집세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지만 돈보다 자존심이 우선하는 깐깐한 노처녀다. 카스텔라는 어느날 클라라의 연극을 보고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다.

'타인의 취향' 은 취미나 성격, 어느 것 하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남녀가 사랑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 프랑스 로맨틱 코미디다. 외도라는 외피를 쓰고 있음에도 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고, 유쾌한 수다 속에 묻어나는 익살과 재치가 '아 이게 요즘 프랑스식 유머구나' 라고 감탄케 한다.

톡톡 튀는 우디 앨런의 코미디적 요소와 수다스럽지만 애잔했던 '비포 선 라이즈' 의 미덕을 갖춘 이 영화는 정교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덕에 '사랑은 취향' 이란 감독의 주장에 어설픈 대꾸를 삼가게 한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3백7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프랑스의 아카데미상인 세자르상에서 작품.감독.여우주연.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흥행과 비평 면에서 고르게 평가를 받은 셈이다. 올해 '와호장룡' 과 함께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발군의 존재는 역시 튀니지계 유대인 여성 감독 아네스 자누이(37). '히로시마 내사랑' 의 알랭 레네 감독의 '스모킹/노 스모킹' (93년)의 각본을 쓰게 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은 자누이는 사랑에 대한 따뜻하고 재치있는 달변으로 데뷔작을 성공작으로 만들어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이후 가장 색깔있는 로맨틱 코미디란 찬사가 아깝지 않다.

감독 외에 시나리오.조연까지 맡은 그녀는 일상에서 가볍지 않은 유머를 건져내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를 섬세하게 잡아내는 재주를 선보인다. 교양없는 중소기업 사장에서 순수한 사랑을 가진 맑은 남자로 변모하는 카스텔라 역을 맡은 바크리는 그녀의 남편이다. 각본은 이 부부가 함께 썼다.

두 주인공 외에 감독은 카스텔라의 운전수 프랑크(제라르 랑뱅), 클라라의 친구 마니(아네스 자누이)등 다섯 명을 주인공 주변에 배치해 그들의 이야기도 별도로 엮어간다. 처음엔 복잡해 보이지만 그들이 서로 얽힌 관계 속에서 고민과 갈등을 풀어가며 속살을 드러내는 과정은 사실적이고 투명해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을 더욱 강하게 흡입한다.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이나 '오!

수정' 에서처럼 솔직하고 노골적인 화법에 화들짝 놀라다가도 이내 잔잔함과 포근함으로 눙치는 대사 덕에 관객은 편안하게 미소를 지을 수밖에….

클래식에서 퓨전 재즈까지 배우들의 감정선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한 음악은 장면과 어우러져 상당한 상승효과를 낸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선율은 클라라의 소녀적 감수성을, 그녀에게 빠져드는 카스텔라의 마음은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아리아로 표현하는데 프랑스 요리처럼 윤기있고 맛깔스럽다. 15세 이상 관람가. 14일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개봉.

신용호 기자

사랑의 취향에 관한 섬세한 고찰은 놀랍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에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관객이 할리우드 취향이어서 '짜릿함이 없다' 고 평해도 이 영화는 할 말이 없다. 전적으로 취향을 존중하는 영화이므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