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장길수 일가족 북경 현지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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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베이징의 서방 외교관들은 탈북자 장길수(17)군 일가족 7명이 26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베이징(北京)판사처에 들어가기 전에 철저한 사전준비를 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과 동행한 탈북자 지원단체인 '북한 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RENK)' 측 관계자들은 장군 가족이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 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다롄(大連)에 머물던 장군 일가족은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지난 22일과 23일 각각 세명과 네명으로 나눠 베이징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 대표인 문국한씨와 일본인 한명 등 후원 인사들은 장군 일행이 UNHCR 베이징 판사처로 무사히 들어간 것이 확인되자 한국은 물론 일본.서방 외신기자들에게 이를 신속히 알려 국제 문제로 부각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들은 취재진에 16명이나 되는 장군 일가의 영문 가계도와 일가족 일부의 사진을 공개하는 등 준비된 모습을 보였다.

○…장군 일가족과 후원단체의 치밀한 준비와 달리 중국 공안(公安.경찰)은 느긋하게 대처하고 있다. 공안은 이날 저녁에야 UNHCR 베이징 판사처가 위치한 차오양(朝陽)구의 와이자오런위안(外交人員)오피스 빌딩 앞 량마허난루(亮馬河南路)에 미니버스 한대와 4~5명의 사복요원을 배치했다.

○…장군 일행을 갑작스레 맞은 UNHCR 베이징 판사처는 출입문을 굳게 닫고 방문객을 사절했다. 사무실로 여러차례 전화를 했으나 매번 자동응답기의 목소리만 흘러 나왔다. 이날 오피스 빌딩 2층의 사무실 출입구를 책상으로 봉쇄하고 경비 한명을 배치했다.

판사처는 장군 일가족의 처리를 위해 중국의 관련 부처와 부산하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길수 가족' 이 중국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난민 지위 신청을 하기까지는 99년 8월 결성된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 의 역할이 컸다.

중국에서 무역업을 하던 文국한(운동본부 사무국장)씨는 길수 가족의 애끊는 사연을 듣곤 아예 구명운동에 매달렸다. 文씨는 지난 15일 단신으로 중국에 들어가 옌볜(延邊)등에서 길수 가족을 돌봐온 조선족 여인과 함께 탈북 난민들의 베이징 이동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文국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운동본부로 전화를 걸어와 "길수 가족이 온몸을 줄로 엮고 '송환되면 자결하겠다' 고 버티고 있다" 고 전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조민근 기자

***** 장길수 일가족 탈북 일지

▶ 1997.3~99.8 길수 일가족 16명 탈북

▶ 99.6 길수 이모 정명숙씨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

▶ 99.10 길수, '서울 NGO세계대회' 서 그림 전시

▶ 2000.5 길수,『눈물로 그린 무지개』 출간

▶ 2000.5 뉴스위크에 길수 가족 소개

▶ 2000.9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 베이징 UNHCR에 난민지위 요구

▶ 2001.1 정명숙씨 북한 재탈출

▶ 2001.3 길수 가족 5명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

▶ 2001.6 길수 가족 7명 UNHCR에 난민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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