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하병준] 데이브레이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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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바이러스가 전 지구에 퍼지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움의 존재로 있어야 할 흡혈귀가 절대 다수가 되어 전 지구를 지배한다는 스토리를 다룬 영화 '데이브레이커스'가 얼마 전 개봉했다. 동생이 형을 물고 아내가 남편을 물고 자식이 부모를 무는 등 피 냄새가 낭자한 스크린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불현듯 중국 서부 지역에 찾아 든 가뭄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데이브레이커스'를 보면 흡혈귀들이 소수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욕구 만족을 위해 인간을 남획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소수가 되자 문제가 시작된다. 그들은 순수한 인간의 피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기 시작하는데 그나마 돈이 있는 자들은 혈액공급회사에서 혈액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 정상 생활을 하지만 가난한 자들은 같은 흡혈귀를 잡아먹으면서 기형으로 변해가다 결국 죽음에 이른다. 영화 말미에는 돈 있는 흡혈귀들조차 인간을 찾을 수 없어 혈액 공급이 끊기면서 자해와 살육을 자행한다.

산업혁명 이후 급속한 산업화, 공업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지난 3,000년에 걸친 문명의 시간 동안 양적이든 질적이든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세상 이치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는 법. 과도한 개발로 인한 수원(水源) 파괴가 증가하고, 대기 오염에 의한 온난화로 이상기후가 잦아지고 있으며, 강수량 감소로 가뭄 지역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인간의 수자원 남용이 극에 이른 것이다. 지금이야 식수 따로 사용하고 가정용 생활용수 따로 사용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선진∙개발도상국의 과도한 수자원 사용이 지속되고 환경오염 확대로 강우 지역 불균형이 가속화된다면 '데이브레이커스' 속 흡혈귀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중국 중앙방송(CCTV) 보도에 따르면 6개월이 넘는 가뭄 때문에 물이 없어 농사는 물론 갈증에 허덕여야 하는 운남성(云南省), 감숙성(甘肅省), 광서성(廣西省), 귀주성(貴州省) 등 지역은 땅이 갈라지고 수원 자체가 말라버리는 심각한 지경에 놓여있다. 그리고 민간 자선단체나 기업체에서 해당 지역 초등학교에 생수를 공급하자 어린 학생들이 수일 동안 식수를 맛보지 못한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기 위해 갈증을 참고 차곡차곡 챙겨두는 모습까지 나왔다. 이미 중국 서부 일부 성(省) 지역은 사선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에서 먼 미래(그나마 희망사항이다)의 우리의 모습, 그리고 '데이브레이커스' 속 비극을 연상하는 것이 무리일까?

다행히 청명절(清明節)을 앞두고 해당 지역에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번 청명절에는 단비가 내려(清明時節雨紛紛) 갈증도 잊고 우리가 수자원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할 수 있게 머리가 맑아지기를 바라면서(路上行人欲斷魂) 두목(杜牧)이 쓴 '청명(清明)'을 감상하며 마무리한다.

清明時節雨紛紛,路上行人欲斷魂。
청명절에 비가 내리니 사람들이 옛 생각에 잠기는구나.

借問酒家何處有,牧童遙指杏花村。
술을 벗하고 싶어하니 어린 친구가 살구꽃 마을을 가르쳐 주네

하병준 중국어 통번역, 강의 프리랜서 bjha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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