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연못’은 순박한 노근리 주민들이 불시에 겪게 된 비극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다. 지난해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리젠테이션 초청작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노근리 프러덕션 제공]
“제 인맥이 대단한 게 아니라, 이런 영화는 꼭 만들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거죠. 우리들 아버지 시대 이야기 아닙니까. 잊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완성도가 굉장히 뛰어난,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을 영화는 아닐지 몰라요. 하지만 의미 있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각본 작업에선 유족 정은용씨의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AP통신 기자들의 특종기 『노근리 다리』의 도움을 받았다. 사건을 되짚을수록 “무고한 이들이 불시에 당한 비극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흙밖에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 산불처럼 휩쓸고 지나간 전쟁에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한 겁니다. 어디 노근리뿐이겠어요. ‘컬래트럴 데미지’(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무고한 희생)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평화를 위해서라고 해도 근본적으로 좋은 전쟁이란 없습니다. ”
이 감독은 드라마틱한 가공을 피했다. 아이들의 합창대회 준비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줄거리도 없다. 마을 주민 모두가 주인공이다. 관객들의 눈물을 빼내겠다는 야심도 보이지 않는다. 쌍굴에서 미군의 무차별 사격을 피하던 한 아버지는 갓난아기가 울자 미군에게 들킬까 봐 아기를 물에 빠뜨려 죽인다.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이지만, 눈에 띌 듯 말 듯 처리됐다.
“아기가 물에 들어가는 장면도 찍긴 했어요. 그런데 이게 맞나 고민이 되더군요. 결국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기로 했어요. 팔다리 잘려나가는 것도 자제했어요. 여운을 남기고 싶었어요. 인간은 아름다운 존재이고, 우리는 그 희망을 믿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증오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까요.”
배우들 ‘가족 캐스팅’도 특징이다. 자야 아빠 김승욱의 딸, 개비 아빠 김뢰하의 아내를 비롯해 도박 좋아하는 민씨 민복기의 아내·어머니·아들이 출연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이니 어색한 느낌이 나면 안 되는데, 이건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출연을 청하면서 어머니나 부인, 자식들도 데리고 나와달라 했죠. 다들 집안끼리도 잘 알던 사이이다 보니 철길에서 폭격 맞고 도망가는 장면에서도 자기 혼자만 도망가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면서 가는 연기가 절로 나오더군요.”
그는 취지에 공감해준 배우들을 보며 여러 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했다. “광정이(2008년 폐암으로 숨진 고 박광정)도 개봉을 봤으면 참 좋았을 텐데…. 드라마 출연과 겹쳐서 한참 바쁠 땐데도 서울과 촬영장을 오가며 참 열심히 해줬거든요.”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