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인류 문명에 빛이 된 고대의 세계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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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만프레드 클라우스 지음, 임미오 옮김
생각의 나무, 566쪽, 2만5000원

지금으로부터 2300여 년 전, 원정길에 올랐던 알렉산더 대왕은 지금의 북아프리카 근처에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신성한 기운을 띤 백발노인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물결 치는 바다 속에 섬이 하나 있으니, 그 이름은 파로스이며 이집트 바로 맞은 편에 있도다. 거기를 잘 살펴보면 상륙하기에 적합한 항구가 하나 있느니.” 이것이 고대의 세계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역사·유적·문화·종교·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그 동안 인류 최초의 세계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얽힌 이야기들을 두루 살피고 있다. 서양 고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 만프레드 클라우스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알렉산드리아와 그곳 주민들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 고대의 가장 중요한 메트로폴리스인 알렉산드리아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새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건설, 클레오파트라의 통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알렉산드리아 방문, 365년의 지진, 14세기 이래로 비잔틴 역사 저술가들이 가장 지성적인 여성의 전형으로 기록한 여성 철학자 히파티아의 살해와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함께 이 도시에서 웃고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했던 보통사람들의 일상까지 두루 폭 넓게 기술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놀랍도록 넓은 분야에 걸쳐 이야기를 잡다하게 풀어놓으면서도 핵심적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의미는 때로 한 도시의 탄생과 소멸로 상징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은이가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책 중에서 지금은 거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건물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등대를 갖춘 항구, 거대한 사라피스 신전 그리고 막대한 장서를 자랑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고학과 건축학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놓칠 수 없는 소재다. 저자인 만프레드 클라우스는 독자들에게 고대의 세계도시 알렉산드리아의 면면을 다루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보잘것없는 개개인의 일상까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나는 그와 함께 떠나는 알렉산드리아로의 여행에서 그 도시에서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유적들을 통해 당시를 복구해내는 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나만 그렇지는 않으리라. 적어도 이 책을 한 번이라도 읽은 독자라면 그리스와 로마로 치우친 최근의 지적 유행을 넘어서 서양 고대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서양 고대사는 유럽 문명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문명 요람기의 역사다. 서양 고대사를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와 동일시하는 시각은 “빛은 오리엔트로부터(ex oriente lux)”라고 말하면서 오리엔트 세계로부터 문명의 세례를 받았다는 로마인들의 주장과는 모순된다. 서구의 프리즘을 통해서 본 서양 고대사는 서구 문명이 오리엔트 문명에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없게 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교육은 서구 중심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정말로 중요한 이 책의 미덕은 우리에게 성숙하고 폭넓은 지식이 세계를 균형 있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세계화시대일수록 역사적 사실에 대한 편협한 지식이야말로 민족의 생존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임웅(강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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