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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르포] 뻥 뚫린 서해 경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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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국 배 두척이 나포어선에 접근 중. 모든 요원은 전투태세. 나포어선을 사수하라. "

지난 15일 오전 6시30분, 북위 37도○○분.동경 1백24도○○분의 서해상. 우리 수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다 나포된 중국어선을 인천으로 견인하던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502호 경비함의 심완섭 함장이 부하들에게 다급히 외쳤다. 동료어선이 단속된 데 앙심을 품은 듯한 중국 배 두척이 빠른 속도로 나포어선을 쫓아오자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충돌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가 시작됐다.

경비함은 선체 좌.우현에 기관총을 배치한 뒤 1㎞ 후미에서 따라오던 나포어선을 호위하기 위해 20노트가 넘는 빠른 속도로 항진했다. 당시 취재진 두명이 탄 나포어선에서는 우리 해경의 견인요원 6명과 중국선원 9명 사이에 긴장이 감돌았다. 경비함이 나포어선에 거의 접근할 때쯤 쫓아오던 중국 배 두척이 긴 반원을 그리며 방향을 돌렸다.

沈함장은 "경비함 한척이 많게는 하루에 5백척의 중국 어선을 상대해야 해 가끔 중국 배들이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이 생긴다" 고 말했다.

◇ 경비함 한 척이 서울~대구 거리 경비=폭풍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2월 16일의 경비 상황도. 서해 전체를 인천.목포.제주발 대형 함정 세척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거친 파도를 견딜 수 없는 5백t 이하급 배들이 피항했기 때문이다. 한 척이 서울~대구 거리인 3백㎞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해양대 이은방 교수는 "군산.태안의 경우 대형 함정이 한척도 없어 기상이 나빠지면 사실상 무방비 상태가 되는 등 함정이 부족해 곳곳이 사각지대" 라고 지적했다.

◇ 목숨을 건 나포작전=지난 15일 오전3시, 깊게 잠든 바다의 적막을 뚫고 중국 어선 70여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국 배의 조업이 금지된 서해 '특정금지구역' 의 바로 바깥에 일렬 횡대로 정렬해 있던 배들이 어둠을 틈 타 우리 해역에 들어오고 있었다. 들락날락하던 10여척 중 한척이 갑자기 무리를 벗어나 우리 수역 2.8㎞ 안까지 들어와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함정에 작전명령이 발동한 건 그 때였다.

"단정(작은 보트)요원들은 전속력으로 발진하라 - ."

중국 어선과 단정간에 치열한 추격전이 벌어졌다. 어선 꽁무니에 단정을 바짝 붙이고 막 배에 오르려던 우리 경찰관 한 명이 중국 어선이 갑자기 방향을 트는 바람에 바다에 빠졌다. 단정 요원들은 동료를 구조한 뒤 다시 상선(上船)을 시도해 중국 어선을 제압했다.

경비함 관계자는 "이번에는 어선 한 척이 홀로 떨어져 있어 다행이었지, 선단(船團)을 이뤄 조업할 때는 '나가달라' 고 읍소하거나 밀어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고 말했다.

◇ 허술한 항공 경비=지난 9일 오후 서해 덕적도 상공. 취재팀을 태운 해양경찰청 소속 헬기가 이륙 40분 만에 짙은 바다안개에 가로막혔다. 비행의 목적은 공해상에 떠 있는 1천5백t급 함정까지 가는 것이었지만 배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해경은 아홉대의 헬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처럼 기상이 조금만 나빠도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 이 헬기의 최대 비행시간은 3시간. 돌아오는 시간이나 비상사태를 대비하면 한시간 남짓(최대 1백해리)밖에 나가지 못한다. 배타적 경제수역(EEZ)인 2백해리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람이 거세거나 안개가 많이 끼면 작전 도중에 회항하기 일쑤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조동오 박사는 "일본 등 선진국들은 초계기가 1차 해양수비를 하다가 필요할 때 함정이 출동하는 효율적.입체적 경비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지만 우리 해경에는 초계기 한 대도 없는 실정" 이라고 지적했다. 해경은 올해 말 겨우 초계기 한 대를 도입해 서해에 배치할 예정이다.

◇ 장비부족.노후화로 작전 포기=지난 3월 말 오후 6시쯤 경남 통영 앞바다. 1백t급 경비정이 불법 조업 중이던 대형 쌍끌이 어선 여덟척을 발견해 추격했다. 하지만 수십㎞를 따라가다 포기해야 했다. 기상이 악화하자 내파성이 부족한 소형 경비정으로 더는 추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중순 군산해경 소속 30t급 경비정은 밀입국자를 태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선박을 발견해 추적에 나섰다. 하지만 건조한 지 20년 된 노후 함정이어서 도저히 달아나는 선박을 따라잡지 못했다.

기획취재팀=이규연 ·김기찬 ·이상복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 용어해설

◇ EEZ(Exclusive Economic Zone)=배타적 경제수역. 해안 기준선으로부터 2백해리(3백70㎞) 범위 안으로, 연안국의 경제 주권이 인정되는 수역. EEZ 내에서 조업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나포 등 처벌된다.

◇ 영해(領海)=연안국의 주권이 미치는 해역. 자원개발의 독점권 등 영토와 같은 권리를 갖는다. 통상 해안기준선에서 12해리 범위.

◇ 특정금지구역=무해(無害)통항권 등은 인정되지만 외국 선박이 조업 등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없는 구역. 어자원 보호를 위해 서해.동해 일부의 산란지역이나 어장보호수역에 지정해 놓았다. 1997년 11월부터 시행.

◇ 해리(海里)=바다.항공 등에서 사용하는 길이의 단위. 1해리는 1천8백52m.

◇ 노트(knot)=선박이 1시간에 1해리를 가는 속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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