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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두번 버림받는 난민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미국 뉴욕의 엘리스섬은 미국 이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1892년부터 1954년까지 세계 각지로부터 1천2백만명이 이곳을 통해 '약속의 땅' 미국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지난 20일 유엔이 정한 제1회 '세계 난민의 날'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유엔 총회는 유엔 난민협약 체결 50주년을 맞는 올해부터 매년 6월 20일을 세계 난민의 날로 정한 바 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2000년 1월 현재 세계 난민 숫자는 2천2백만명이다. 1990년 1천5백만명에서 90년대 중반 아프리카 내전으로 크게 늘었다가 후반에 감소하더니 지난해부터 다시 늘기 시작했다. 국가 중 가장 많은 팔레스타인은 중동.북아프리카에 4백만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

대륙별로는 아프리카가 전체의 4할을 차지한다. 수단.시에라리온.소말리아.부룬디.앙골라.에리트레아.콩고 등 내전으로 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다.

난민은 전쟁 또는 정치.종교적 박해로 추방된 사람이다.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발생한 위험으로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선택한 결과로 위험한 처지에 놓인 정치범과는 다르다. 유엔 난민협약은 난민에 대한 일정한 보호를 정해 놓고 있다.

각 나라는 난민을 보호할 법적 의무는 없지만 적어도 박해가 기다리는 곳으로 난민을 추방할 수는 없다. 이것이 '추방.송환 금지원칙' 이다. 또 난민의 현지 동화(同化)를 돕고 권리를 적극 인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는 강제 아닌 권고에 불과하다. 최근 선진국들은 난민 신청 자격을 까다롭게 제한하고 있다. 또 난민에 대한 원조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의 경우 92년 2억2천1백만달러이던 것이 99년 9천5백만달러, 지난해 3천8백만달러로 줄었다. 기부금에 주로 의존하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올해 예산을 9억5천5백만달러로 잡았으나 기부금이 8억1천만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사업을 줄이고 직원을 15% 감원할 계획이다.

돈 가뭄으로 우선 타격을 받는 것은 난민을 수용한 나라들이다. 어려운 경제사정에 국제사회로부터 지원까지 줄어들자 더 이상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난민들 가운데 일부를 본국으로 송환하기에 이르렀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2백만명을 안고 있는 파키스탄은 이달 말까지 3만명을 본국에 돌려보낼 계획이다. 파키스탄은 지난해 가을 이후 아프가니스탄 난민 10만명이 추가로 들어옴으로써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구상에서 분쟁이 사라지고 국가간 빈부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난민은 발생하게 돼 있다. 그렇다고 세계화시대에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나라마다 대문에 빗장을 지르고 살 수는 없다. 국제사회는 분쟁을 해결하는 노력과 함께 인도주의 차원에서 난민을 수용하고 원조를 제공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가난과 절망의 바다에서 홀로 번영의 섬을 지켜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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