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송재학 '흰뺨검둥오리'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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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 새들은 흰 뺨이란 영혼을 가졌네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에서 흰색까지 모두

이 늪지에선 흔하디 흔한 맑음의 비유지만

또 흰색은 지느러미 달고 어디나 갸웃거리지

흰뺨검둥오리가 퍼들껑 물을 박차고 비상할 때

날개 소리는 내 몸 속에서 먼저 들리네

검은 부리의 새떼로 늪은 지금 부화 중,

열 마리 스무 마리 흰뺨검둥오리가 날아오르면

날개의 눈부신 흰색만으로 늪은 홀가분해져서

장자를 읽지 않아도 새들은 십만 리쯤 치솟는다네

- 송재학(1955~ ) '흰뺨검둥오리' 중

이 나라 산천의 새와 나무와 풀과 벌레들에게 어여쁜 우리말 이름을 붙여준 학자들을 나는 존경한다. 그분들은 대단한 시인이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명시를 쓴 분들이다.

흰뺨검둥오리,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그 이름만 들어도 눈에 선하다. 그 새가 물을 박차고 비상하는 소리를 '퍼들껑' 이라고 쓴 시인의 귀도 대단하다.

이 세 글자의 의성어는 흰뺨검둥오리와 만나 생생하게 그와 동무가 되었다. 이렇게 퍼들껑, 날아올랐으니 우주 바깥인들 왜 못 치솟겠는가.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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