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비 막내공주 영욕 31년 삶 수면제로 접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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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10일 영국 런던의 레러드 호텔에서 레일라 팔레비(31.사진)라는 한 여인이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녀는 이란의 마지막 왕인 팔레비의 막내딸로 1979년 이란혁명 후 망명, 서방국가에서 생활해 왔다.

영국 경찰은 그녀가 오래 전부터 수면제를 복용해왔기 때문에 자살인지 실수였는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가 깊은 잠을 원했다는 점이다. 그녀가 묵은 하루 숙박료 90만원짜리 방에는 TV가 켜져 있었고 이날은 이란의 대선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주위사람들은 그녀가 기존 집권세력이 계속 정권을 유지하는 것을 보며 조국에 돌아갈 희망을 잃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레일라는 아홉살의 나이에 부모를 따라 이집트.모로코.바하마를 거쳐 미국으로 도망쳐 왔다.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한 것이었다. 혁명세력이 테헤란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50여명 인질을 억류하며 왕족들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던 이듬해 그녀의 아버지는 암으로 숨졌다.

이후 미국 정부의 보호 속에 92년 브라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동부의 명문학교에서만 공부했다.

5남매의 막내인 그녀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아버지가 상당한 재산을 해외에 예치해 놓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미 코네티컷주의 집과 런던, 그리고 어머니가 살고 있는 파리를 돌아다니며 방황했다. 런던에선 중동 부호의 자녀들이 드나드는 나이트클럽을 전전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결혼 계획에 대한 질문에 "우선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 고 답했다. 그녀는 미모와 경제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도 없이 쓸쓸히 살아왔다. 그녀의 죽음이 알려지자 어머니인 파라 전 왕비는 "늘 이란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며 딸의 죽음을 자살로 받아들였다.

파리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미국.프랑스.스위스 등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모여 22년 동안 귀향을 꿈꿔온 막내공주의 죽음을 슬퍼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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