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문고시와 언론자율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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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세청의 세금추징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고시(告示) 부활, 부당내부거래 과징금 2백42억원 부과 등의 조치들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강경조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최근 분위기는 언론에 대한 정부 의지의 강도를 짐작케 한다.

우리는 언론이라고 해서 불법.부당행위에 대한 처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개혁 또한 필연적이라고 보고 자율적으로 시정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신문업계가 지난해 11월부터 과당경쟁행위의 기준과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자율 감시기능을 확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최근의 정부 움직임은 이런 자율노력을 무시하고 언론계 활동에 구체적으로 간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공정위는 신문업계는 물론 정부기관인 규제개혁위원회까지 강하게 반대했던 신문고시를 2년6개월 만에 부활시켜 7월 1일부터 시행키로 했다. 우리는 강매.강투로 얼룩진 신문판매의 잘못된 질서를 바로잡자는 여러 시도와 노력을 하고 있다.

또 무가지를 무한정 발행해 곧장 파지로 다뤄지는 잘못된 관행도 바로잡아야 하며 이를 위해 언론사들의 공동보조가 시급하다는 것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해 신문고시의 실체를 인정하더라도 그 기준이 극히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 공정위가 마음만 먹으면 신문사, 특히 중앙.조선.동아 등 상위 3개사에 판매.광고는 물론 심지어 편집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독소조항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새 고시는 '독과점 지위 신문사가 판매가.광고료를 원가변동 요인보다 현저히 높게 결정.유지.변경하는 경우 시장지배적 남용행위' 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 제도상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이 75%에 못 미쳐도 공정위가 이들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명백히 '빅3' 를 겨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지적재산권 대상인 신문의 '합리적인' 광고가격 수준을 정부가 정하겠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특히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근거없는 내용으로 광고주 등을 비방하는 기사를 게재하는 행위' 를 대상에 포함시키고, 그 기사의 진실성을 공정위가 판단하겠다는 것은 기사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다. 이밖에 공정위는 "표적조사를 막기 위해 조사는 사전에 통보해 달라" 는 신문협회의 요구마저 고시에 반영치 않아 관(官)의 언론 개입 소지를 열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정위의 언론사 부당내부거래 조사 역시 시기나 조사 방법.과징금 규모 등에서 통상적 수준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공정위 조사는 연초 대통령 업무보고 때도 없다가 세무조사와 맞물려 갑자기 나왔다.

또 30대 그룹과 주요 공기업을 대상으로 하던 조사에 규모가 훨씬 작은 언론사들을 대거 포함시킨 것도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 지난해 4대 그룹에 4백42억원, 한국전력.주택은행 등 5대 공기업에 3백95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것과 비교할 때 중소기업 규모인 13개 중앙 언론사에 무려 2백42억원이 부과된 것은 형평상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신문계 스스로 판매와 광고분야에서 고칠 사안은 과감히 고쳐나가야 한다. 그 자율적 개혁이 미진할 때 타율적 개혁이 개입할 수도 있다. 공정위는 "개입할 의도가 절대 없다" 는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신문고시를 이용해 신문사의 제작.경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신문협회도 관의 개입을 불러들이지 않도록 공정경쟁을 유도할 자율규약을 만들고 공정경쟁심의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해 자율개혁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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