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도 상투적인 틀 벗어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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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제야말로 옛것을 지키되 새로움을 가미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절실합니다."

제1회 세계서예비엔달레 기념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장세훈(張世勳 ·42 ·경기도 박물관 학예연구실)씨.학창시절부터 전국의 서예전마다 참가해도 줄곧 고배를 들다 이번에 대상까지 받게 되자 "뜻밖에 너무 큰 상을 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다수의 서예전이 60호(가로 2m ·세로 70㎝)로 규격이 정형화된 것만 받아주고,선인의 글씨체에 가까울수록 당선 확률이 높았다는 것.

"지금까지 서예는 대부분 틀에 박힌 글씨를 가르치고 배웠으며 공모전 역시 일정한 규격의 작품만 요구했습니다.자연히 서예계 전체가 상투적인 틀에 갇혀 정형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모전은 파격에 가까웠다.개인의 기량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엽서 크기인 1호부터 30호까지 자유스럽게 출품토록 했다.그 결과 다양한 형식의 실험적이고 조형미가 가미된 작품이 1천점 이상 몰렸다.

이번에 당선된 張씨의 작품 '부모은중경'도 골동품 가게에서 구한 낡은 6호짜리 닥나무 종이에 전각과 한글을 뒤섞여 있다.주최측은 대상선정 경위를 "대다수 작품들이 옛 서체를 섬세 예쁘게 담아내려 한데 비해 張씨의 작품은 거칠면서도 고졸하고 천진스러운 맛이 가미돼 있다"고 밝혔다.

張씨는 어릴 적 서당 훈장이었던 할아버지한테 기초를 배운 후 줄곧 독학으로 붓글씨 공부를 했다.옛 서첩이나 편지 글 등을 구해다 선인들의 글씨를 흉내내 보기도 하고 서예전이 열리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마다않고 발품을 팔고 다녔다.

"30여년 동안 혼자 붓과 씨름해 왔는데,볼펜을 잡듯 자연스럽고 편안한 마음으로 써 출품했었습니다."

張씨는 "직장이나 집에서 일주일에 3일 이상은 꼭 붓을 들 정도로 묵향에 젖어 산다"며 "서예는 사고의 폭을 넓히고 깊게 해 줘,요즘처럼 번잡하고 요란한 세상에 정말 좋은 취미다"고 말했다.

1남4녀 중 맏이인 이번 상금(5백만원)을 어머님께 드릴 것이라고 말할 만큼 효성이 깊다.

한편 세계서예비엔날레는 전북도가 2년에 한번씩 열어 제3회 대회가 오는 10월6∼11월5월 전주에서 개최된다.이번 공모전은 이 대회를 기념해 열렸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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