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식인 지도]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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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만약에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종(生物種.지구에 존재하는 개체 생물들을 말함)의 일부가 멸망한다면, 또 지상의 생물종이 절반 정도 감소한다면 도대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그리고 왜 우리는 그런 생물종의 감소에 대해 우려하는 것일까□

누구나 흔히 던질 수 있는 이런 질문에 대해 해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심지어 환경 문제를 전공하는 전문 과학자들조차도 이런 질문은 회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문학이라는 전혀 동떨어진 두 영역에서 미국 최고의 영예를 동시에 거머쥔 에드워드 윌슨(72)이라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는 미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을 두 번이나 받았는가 하면 과학자에게 주는 미국 최고의 영예인 국가과학자메달의 수상자이기도 하다.

윌슨은 만약 우리가 생물 다양성의 훼손을 방치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새로운 과학적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근원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엄청난 잠재적 가치를 지닌 풍요로운 생물상(生物相.여러가지 생물들의 전체 모습)이 파괴됨으로 해서 새로운 의약품.농작물.목재.기호품 등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는 결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윌슨은 생물 다양성의 파괴, 곧 생태계의 훼손이 우리 인류의 미래에 보다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오랜 진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우리 인간은 물질적.정신적으로 자연과 아주 깊은 연관을 맺게 되었기 때문에 건강한 자연과 함께할 때에만 비로소 참된 인간성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윌슨은 자신의 이런 자연친화 사상을 '바이오필리아(biophilia)' 가설로 정리하였다.

바이오필리아란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는 자연계 모든 생물에 대한 애착심(측은지심.惻隱之心)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고다. 이 가설을 처음 주장한 윌슨은, 인간이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자연계의 과정에 본원적으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1984년에 처음으로 바이오필리아(bio생물+philia사랑)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윌슨은 인간이 다른 생물종에 대해 측은지심을 갖게 된 것은 인간 종족의 발달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인류의 정신적.물질적 발전에 있어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바이오필리아 가설은 자연이 인류가 생존 유지와 종족 번식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물질자원의 공급원이라는 피상적인 관념을 훨씬 넘어서서 인간은 심미적.지성적.인지적, 심지어 정신적 안정과 만족을 위해서도 자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선포한다.

***심미.정서적 발달에 영향

윌슨에 의하면 인류의 진화는 역사책에 쓰인 것처럼 불과 8천년 혹은 1만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호모속(Homo屬.인간종)으로 간주되는 최초의 유인원(類人猿)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수백만년 전 또는 수천만년 전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90% 이상의 기간은 수렵채취인의 시대였는데, 이 기간에는 인간의 삶이 거의 전적으로 자연계를 구성하는 생물에 대한 정보의 축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에도 야생의 침팬지나 고릴라 무리들을 관찰하면 쉽게 확인된다.

필경 우리 인간의 두뇌는 현대 생활에서와 같은 기계적으로 통제되는 그런 세상이 아닌, 생물중심적인 세상에 적합하도록 진화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깊은 숲 속이나 한적한 바닷가에서 더할 수 없는 마음의 평온을 누리는 것이리라.

지난 수천년 동안 문명이 발달하면서, 그리고 특히 최근 몇 세대 동안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하는 자연에 대한 본원적인 친밀감이 현저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윌슨은 우리 인류가 바이오필리아라는 본원의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서 범지구적 생태계 훼손이라는 환경 재난에 강력히 대처할 것을 열렬히 주창한다.

1995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미국 최고의 지식인 25인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한 윌슨은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 대해서 그들이 영원히 존속해야만 하는 본원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으면 그런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곧 인류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규정했다. 수십년 동안 저명한 개미 연구가로서 명성을 떨친 윌슨이었기에 그의 이런 지적은 더욱 생생한 의미를 전해준다.

만약 인간의 심성 깊숙한 곳에 바이오필리아의 감정이 그렇게 넓게 자리잡고 있다면 현재와 같은 급속한 자연 파괴와 환경 오염의 심화는 인간의 정신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정신의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은 아직 이런 질문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하지만 사정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윌슨은 자연 환경의 보전을 더욱 강력히 주장한다.

"도덕적 행동도 진화 산물"

특히 윌슨은 자연 보호의 상징으로 생물 다양성의 보전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유전자.유전형질의 다양성에서 생물종 다양성에 이르기까지 생물의 다양성은 한번 훼손되면 결코 다시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지구의 일부 지역만이라도 종(種)다양성이 야생 상태를 그대로 유지될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생물권(生物圈)이 다시 회복될 것이며 우리 후손들은 자연이 제공하는 모든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반대로 현재와 같이 무분별하게 생물 다양성의 감소가 지속된다면 인류의 본원적 '인간성(humanity)' 은 점점 더 빈약해질 것이다. 우리가 자연 보전에 더욱 노력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생할 수 없는 생태계

"뱀 한 마리는 소중한 존재다. 고인 연못의 물 냄새, 꿀벌의 윙윙거리는 소리, 집단 군무를 추는 억새밭의 전경(全景)도 모두 소중하다. 풀 속에 숨어있는 작은 동물 한 마리에 열광해 그것을 지켜보느라 나는 저녁 식탁에 앉는 것조차 잊곤 하였다. " 평생을 자연과 함께 살면서 자연의 귀중함을 온 몸으로 깨우친 하버드대 노교수인 윌슨의 바이오필리아 정신이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소장.환경학 박사

*** 에드워드 윌슨은…

▶1929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의 버밍엄에서 출생.

▶앨라배마대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음.

▶56년부터 하버드대 생물학 교수로 재직.

▶현재는 하버드대 펠레그리노 석좌교수이며 미국 학술원 회원.

▶20여 권의 과학 명저를 저술한 과학저술가로서 『인간 본성에 대하여』와 『개미』로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

▶미국 국가과학메달.국제생물학상 수상.

*** 제3부 '기로에 선 모더니티' 소개

1圖 단턴과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게재일 5월 3일)

2圖 낭시와 라쿠라바르트의 해체철학(5월 10일)

3圖 '성찰적 근대화' 의 기수 벡.기든스.래시(5월 17일)

4圖 지젝의 정신분석학 '새로 읽기' (5월 24일)

5圖 스피박의 '서구 배움에서 벗어나기' (5월 31일)

6圖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기수들(6월 7일)

7圖 카오스와 복잡계과학의 선구자들(6월 14일)

※제3부와 함께 제1부 '20세기에 대한 거역' , 제2부 '세계화의 도전과 응전' 기사는 중앙일보의 인터넷신문 조인스탓컴(http://www.joins.com)을 클릭하신 후 '기획.연재.쟁점 시리즈' 의 국제면에 들어가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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