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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의전과 품격, 정상외교가 완성되는 곳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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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호 20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에서 돌아온 직후인 2008년 5월 초 일이다. 류우익 당시 대통령실장과 김인종 경호처장이 충북 청원의 청남대를 찾았다. 청남대는 역대 대통령들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1980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지어진 이후 20년간 대통령의 휴가지로 이용됐다. 2003년 4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일반인에게 개방돼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국격의 상징 영빈관

류 실장 일행이 청남대를 다시 찾은 건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받은 각별한 예우와 의전에 대한 기억과 감동 때문이었다.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1박은 첫 만남인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이 대통령을 오랜 지기 같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만들었다. 외교의 중요성을 역설해 온 이 대통령으로선 캠프 데이비드처럼 외국 정상들을 접대할 대통령 별장이나 영빈관의 유용성을 피부로 느낀 방미였던 셈이다.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 위치한 청남대는 월출봉·작두산 등으로 에워싸인 천연 요새다. 대청호가 청남대 인근을 둘러싸고 있어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그러나 청와대는 서울에서 거리가 떨어져 있는 등 지리상 문제 등을 들어 사업계획을 더 이상 진척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영빈관(state guest house)은 정상외교의 백미로 불린다. 국빈으로 초대받은 정상들에게 영빈관은 초청국이 베푸는 최고의 예우와 의전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짧은 체류기간에 방문국의 역사와 문화·예술 수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최고의 의전과 파격적 예우를 받고 있다는 걸 느끼면 자연 공식 석상에서의 현안 논의나 양국 간 협정 체결 등이 한결 부드럽게 풀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영국·프랑스·중국·일본 등 강대국들은 영빈관을 운영하고 있다. 대개 국빈방문(state visit)인 경우에 한해 영빈관에 초대된다. 미국은 백악관 맞은편에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를 두고 있다. 국왕이 있는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왕족이 살고 있는 궁전의 일부를 영빈관 용도로 쓰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 시내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고풍스러운 호텔을 정부가 민간에 위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어 운영비가 절감되는 경제적 효과도 있다.

대체로 사회주의 국가들의 영빈관이 규모가 웅장하고 화려한 편이다. 중국의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의 경우 1992년 한·중 수교 회담, 북핵 6자회담 등이 열리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등 국가원수급 인물들이 여기에 묵었다. 김 전 대통령이 지난해 서거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정부는 예외적으로 전직 대통령에게 댜오위타이 18호각을 숙소로 내주는 파격 의전을 베풀기도 했다.

대식가이면서 특히 중국음식을 즐겼던 김 전 대통령을 위해 댜오위타이에서만 맛볼 수 있는 최고급 요리가 만찬 석상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엔 국빈방문 자격이 아닌 정치인의 방문 때나 민간 기업을 상대로 제한적으로 댜오위타이 숙박을 허용해 일종의 국영호텔 개념으로도 쓰이고 있다.

북한은 백화원초대소라는 영빈관을 운영한다. 평양 시내에서 10분 거리인 대성구역 임흥동에 위치한 곳으로 국빈급 외국 인사들의 숙소로 쓰기 위해 1983년 건립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때 숙소로 이용했다.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과 98년 방북한 정주영 전 현대 회장도 이곳에 묵은 적이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현재 외국 정상이나 국빈을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별도의 전용 숙소는 없다. 국빈이 방문하면 하얏트·신라·롯데 등 특급 호텔에 숙소를 마련한다. 다만 외국 정상들이 방문했을 때 베푸는 오·만찬은 청와대 내 영빈관(사진)이라 불리는 연회장에서 열린다. 하지만 이 영빈관 역시 외빈을 맞는 전용 공간은 아니다. 현판도 붙어 있지 않은 대형 연회장이지만 외빈 행사가 주로 열리기 때문에 영빈관으로 부른다. 한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줄 전통 문양이나 가구·인테리어도 갖춰져 있지 않다.

올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영빈관 건립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정상급 국빈이나 귀빈(VIP)들을 위한 전용 시설을 갖출 때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경호가 수월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도 국격에 맞는 영빈관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아직은 공론화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영빈관 건립과 관련해선 다양한 아이디어가 거론되고 있다. 우선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컨소시엄을 형성해 고급 호텔을 짓고, 정부가 지분의 일부를 소유해 시설을 국빈 용도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국민의 세금 부담을 줄이고 시설 이용률을 높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 정부가 영빈관 시설을 짓고, 관리는 민간에 위탁하는 방안도 나온다. 이렇게 할 경우 최고 수준의 질 좋은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영빈관 시설을 갖춰야 하느냐는 데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일반인들과 격리된 전용시설은 경호가 쉬운 반면 수행단이 대규모일 경우 정상들과 일행이 한 곳에 숙박하지 못하면 오히려 불편을 줄 수 있고, 무엇보다 한국적 생동감과 역동성을 생생히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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