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국 MD를 이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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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과 러시아가 부시 행정부의 MD체제 구축을 둘러싸고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 초대 외무장관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를 통해 중앙일보에 '미국의 미사일 방어 구상은 러시아에 기회' 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돼지처럼 살았는데 앞으로 50년이라고 그렇게 살면 안되란 법이 있나. " 1972년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 사수에 완고한 사람들이 미사일방어 체제에 관한 모든 가능성을 닫으면서 하는 말이다. 이들은 이 방어체제 개발에 반대함으로써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다른 나라들을 핵위협의 영원한 포로로 잡아두고 있다.

'모든 희생을 감수한 ABM' 이라는 시각은 오직 냉전의 광기 아래서만 '보장된 평화' 를 가져다준다. ABM이 점차 가속화하는 군비경쟁을 막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모스크바와 워싱턴의 첫번째 전략핵무기 감축 약속인 93년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Ⅱ)이 체결되기까지는 20년이나 걸렸다.

START-Ⅱ는 ABM협정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이는 보다 새롭고 급진적인 군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함축했지만 불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모스크바가 START-Ⅱ를 비준하는 데만 8년이 걸렸다. 이런 와중에 새로운 위협이 생겨나고 있다.

게다가 오늘날 전세계를 위협할 수 있는 나라는 초강대국만이 아니다. 작은 나라들과 심지어 테러집단까지 '위협' 을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러시아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이같은 위협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ABM협정을 지지하고 모든 MD체제를 거부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러시아는 자동적으로 변화에 반대한다. 언제쯤 러시아는 미국에 대한 광적이고 강박적인 태도를 멈출 수 있을까. 강력한 러시아 지지자들의 열등감은 강점이 아니라 약점을 드러낸다. 거대한 경제.기술 자원을 가진 미국은 적이면서 협력자가 될 수 있는 특별한 나라다. 러시아는 미국과 긍정적인 협력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현재 파키스탄 장군들은 원자탄을 수중에 넣고 있다. 내일이면 이란이 원자탄을 갖게 될지 모른다. 북한은 이들이 이런 무기를 보유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러시아는 이런 나라들의 위협을 받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세기의 계획' 인 MD에 참가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러시아의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새 방어체제 발전의 협력자가 되길 원한다면 성실하게 ABM 개정 협상에 임해야만 한다. 협력관계를 향한 문은 이미 열려 있다. 러시아는 단지 이를 막지 않으면 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MD구축과 관련한 ABM협정 문제에 대해 미국이 러시아와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물론 부시의 말이 진짜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양측 모두 냉전의 호전성을 넘어서야 하는 시점이다. 음모론과 불신, 스파이 색출, 기술교환 금지 등은 과거로 돌려야 한다. ABM을 둘러싼 미.러 협상은 양국 모두에 큰 부담이 되는 난제가 될 수도, 러시아 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도 있다.

러시아는 지금 사서 고생을 하거나 스파이를 고용하는 대신 '자본주의의 햇볕이 드는 터' 를 찾아야 할 때다. 전세계와의 산업 경쟁은 '어제' 시작됐어야 한다. MD에 반대하는 유럽과 중국은 매우 신중하게 행동하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의 ABM 방어논리 뒤에 숨어 정작 모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이들은 이 문제가 흑백으로 가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미국과의 대립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는 ABM문제를 다루기 위한 특별 국제기구 창설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 기구는 MD 분야에 있어서의 국제협력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외교.군사적 측면에 얽매이는 대신 기업적 관심사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러시아에게 국제 산업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정리=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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