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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대량학살 부르는 증오 … 증오 가라앉히는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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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리는 어쩌다 적이 되었을까?
로버트 J 스턴버그, 카린 스턴버그 지음
김정희 옮김, 21세기북스
368쪽, 1만5000원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보스니아·르완다·부룬디·다르푸르의 인종청소, 그리고 테러리즘. 이토록 끔찍한 대량학살이 왜 그치지 않는 것일까. 미국의 심리학자와 리더십 연구가인 두 사람은 대량학살의 가장 큰 이유로 증오를 꼽는다. 두 사람은 증오가 어떻게 독버섯처럼 자라나 끔찍한 학살을 유도하는지를 이 책에서 살피고 있다.

지은이들은 “증오란 타고난 감정이 아니라 학습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의도적인 선전에 의해 끊임없이 커져서 궁극에는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쁜 소문은 편견을 낳고, 편견은 증오를 키우며, 증오는 피를 부른다는 설명이다. 지은이들은 광신, 부정적인 리더십을 통한 만족감 경험, 권력욕 충족, 자원 확보, 내부결속 도모 등을 증오의 성장인자로 꼽았다.

부부는 물론 나라·종족, 심지어 문명권 사이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증오와 편견이 독버섯처럼 자란다. 나치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는 “부적합한 사람을 희생시킴으로써 더 나은 생활조건을 제공한다”는 흑색선전으로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다. 르완다의 후투족은 “투치족을 없애야 더 나은 르완다를 만든다”는 선전 속에 손에 피를 묻혔다.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계의 세력확장과 지배적 위치 확보를 위해서는 열등 민족의 대량학살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퍼뜨렸다. 이렇듯 증오는 독재자의 생존수단의 하나로 의도적으로 키워지는 측면이 강하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증오란 럭비공과 같아서 제어하기가 힘들다. 학정을 펴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더니 이번엔 이라크 내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가 서로 증오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심지어 중재자까지 증오했다. 증오는 이처럼 전염성이 강하다. ‘정신적인 바이러스’로 불릴 정도다.

그런데 증오는 사랑과 의외로 닮은 점이 있다. 특히 열정·헌신·믿음이 구성요소라는 점에서다. 테러리스트들이 자폭테러에 나선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이 세 가지와 연결된다. 방향과 결과만 다를 뿐이다. 지은이는 “문제는 지혜”라고 설파한다. 증오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미리 생각해보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혜로 편견을 넘어서고 용서를 추구하며 증오를 가라앉혀 평화를 추구한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서 킹, 마더 테레사, 넬슨 만델라 같은 지도자들이 국제사회에 더욱 절실한 이유다.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은 남을 증오하지 않는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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