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직 전문기자 칼럼] 교차로 짜증의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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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 남산길 내리막에 설치된 횡단보도엔 가끔 한두명씩 보행자가 나타난다. 신호등은 그러나 1년 열두달 똑같은 간격으로 노약자도 충분히 건널 시간 동안 적색신호를 켠다.

보행자가 없을 때 '알아서' 슬금슬금 사전출발을 하던 운전자들을 '카메라 고발업자' 들이 무더기로 신고하자 당국은 "사진고발이 많은 곳이니 조심하라" 며 친절하게(?) 현수막을 내건다. 그보다는 보행자가 버튼을 누르면 신호가 바뀌는 신호기로 바꾸는 게 효과적인데….

경기도 안양시 시청앞 동서방향 도로도 '낙후 신호운영' 의 본보기다. 교통관제센터가 없어 주변교차로 신호기를 하나로 못 묶고 교차로마다 차가 많든 적든 관계없이 비슷하게 제각각 신호를 주는 시스템이다. 한 주민은 "2개 교차로를 연속 녹색신호를 받고 통과하는 날엔 복권을 산다" 고 말할 정도다.

반면 분당신도시 주요 도로 신호기들은 속도에 따라 연동화(連動化)된다. 그러나 제한속도인 시속 70㎞를 기준으로 연동화시키는 바람에 과속을 부추기고 오히려 차량 흐름을 엉키게 만든다.

감사원이 지난 2월 서울을 비롯한 전국 도시의 교통신호기 운영실태를 감사해 밝혀낸 엉터리 신호운영 실패는 정말 충격적이다.

"서울의 경우 연동화 구간 중간중간에 연동화가 전혀 불가능한 일반신호기를 설치했다" "교통량 검지기는 회전교통량 확인이 불가능하고 직진교통량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전자신호기의 신호구동기 1만3천개 중 5천여개를 사용하지 않고 사장(死藏)했다" "신호패턴이 계절별.요일별.시간대별로 변화되지 않고 월~금요일 동일했다" "신호제어기를 표준화하지 않아 예산낭비는 물론 구성모듈간 호환이 안된다" 등등이다.

이같은 사정으로 차량 흐름과 무관하게 설치된 교통신호기로 인해 운전자들만 짜증을 내야 했던 셈이다. 감사원은 또 신호기 기종이 다양하고 호환이 안돼 신호운영의 난맥상을 부채질했다고도 지적했다.

새로운 신호시스템을 운영하려면 구형신호기는 전량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서울경찰청이 교통신호기 표준규격서를 제정해 시행한다고 한다. 당국은 전국으로 하루 빨리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음성직 교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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