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칼럼] 언제까지 돕기운동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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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에 살면서 가끔 느끼는 일이지만 한국인들은 다소 서구인들에 비해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열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긍정적인 표현을 하자면 무슨 일을 추진하는 데 집중력과 단결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장기적인 계획 없이 그때그때 현안처리에만 급급해한다는 의미도 된다.

여론에 부각되고, 시급한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한 마음으로 매달리지만, 잠시 관심이 없어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잠잠해진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큰 걱정은 역시 가뭄일 것이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논과 밭이 타들어가고 극심한 가뭄으로 절망한 농부가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여러 지역에서 식수가 모자라고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도 심해 농산물 값이 오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단비를 내려줄 것을 고대한다.

국가적 재앙을 만나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여러 곳에서 가뭄으로 인한 피해지역을 돕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내가 아는 한국인 공무원의 말에 따르면 공무원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이같은 자발적인 캠페인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월급의 일부가 아예 '성금' 으로 공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성금을 월급에서 일률적으로 공제한다는 것은 다소 놀랍다.

금 모으기나 수재민 돕기,가뭄이 극심한 지역 돕기 성금 등 온 국민이 힘을 합해 고난을 극복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전통이다. 그리고 유난히 한국에는 이러한 종류의 캠페인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좋은 일을 하는 데는 비판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처럼 펼쳐지는 단기적 캠페인들이 한국인들을 단합시키고 정신적으로 용기를 북돋는 데는 더 없이 좋지만 경제적 실효성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좋은 예로 지난 경제위기 때 세계를 놀라게 해주었던 금 모으기 캠페인을 생각해보자. 1997년 말과 98년 초 한국의 상황은 경제적으로 대단히 위급한 상황이었음은 모두가 인지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금뿐만 아니라 외화가 될 만한 것은 모두 파는 게 정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금 모으기로 말미암아 한국이 당시 얼마나 많은 외화를 획득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 한국이 그만한 양의 금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이 들었을 수도 있다.

최근의 '가뭄지역 돕기 캠페인' 을 보면서 나는 지난해 여름 경기 북부지역에 발생했던 홍수를 기억해 냈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은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재작년에도 그런 일은 있었다.

정부의 재정은 한정된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성금 역시 마찬가지다. 만일 과거에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그때그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안처리에만 급급해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 댐이나 저수지와 같은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힘을 쏟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정도의 가뭄이나 홍수는 사전에 극복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99년 초 몇몇 주한 외국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한국 정부나 국민이 진정으로 국가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정책의 우선순위를 수자원이 엄청나게 부족할 미래에 대비해 댐을 건설하는 데 두고, 포화상태에 있는 도로망 등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고 진지하게 토의한 기억이 생생하다.

댐이나 저수지의 건설, 도로망 등의 사회적 인프라 구축에는 장기적 계획과 많은 투자, 인내심이 필요하다. 정치적인 입장에서 보면 별로 수지가 안맞는 계획일 수도 있고, 현재의 인기와 타협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매년 수재민 돕기 운동과 가뭄 지역 돕기 운동을 반복할 것인가? 국가재정의 우선순위를 어디에다 둘 것인가? 결정은 한국인만이 할 수 있다.

웨인 첨리 다임러 크라이슬러 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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