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조영남씨 시인 이상의 천재성에 매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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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책 없이 '막가파' 식으로 책을 읽어왔지만, 기억을 더듬자면 젊은시절 나를 매료시킨 사람은 윤동주.이상 그리고 카뮈 등이었다. 그중에서도 괴상한 시인 이상은 지금껏 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있다.

왜 나는 이상을 그토록 오래 끌어안고 있을까. 그건 간단하다. 이상의 천재성은 그 어느 때는 나를 절망케 했고, 또 어느 때는 그 천재성이 내게 희망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상과 관련된 책을 무조건 사들인 것도 그 때문이다.

대중가수로 옮겨갈 즈음 나는 콜린 윌슨이란 영국청년을 만난다. 그가 쓴 『아웃사이더』라는 책에 흠뻑 빠진 것이다.

콜린 윌슨의 기여는 지대했다. 그는 내게 아웃사이더로 머물도록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냥 대책없이 문 밖에 서있던 내 신세와 비슷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거기서 몽땅 운좋게도 만날 수 있었다. 니체.반 고흐.사르트르.버나드 쇼 등 말이다. 그러나 콜린 윌슨은 보들레르를 빼먹는 실수를 했다.

보들레르, 그는 빅토르 위고처럼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상태로 인간을 이끌어간 것이 아니라 그 정반대였다. 누추한 지옥과 악마적 심성으로부터 인간성 회복을 외친 진정한 아웃사이더라고 나는 판단한다. 보들레르는 왕년의 서울대 김붕구 교수가 쓴 『보들레르 평전-미학과 시세계』 딱 한권으로 끝을 냈다. 지금도 이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점점 의아해진다.

"왜 우리의 시인 이상에 관한 제대로 된 평전은 없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습관처럼 세계 최고의 현대시인 보들레르와 한국 최고의 현대시인 이상을 비교하면서 나는 문득 한국 물건이 서양 물건을 능가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쉽게 말해 우리의 이상이 천재성에서 보들레르를 능가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상의 우수성을 입증해보겠다는 돈키호테식 결심에 시달리고 있다. 당장 내 앞의 숙제는 이상을 소재로 과연 톰 울프가 쓴 『현대미술의 상실』 같은 명저를 써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궁금해할까 언급하지만, 내게 중요한 또 하나의 덩어리인 종교문제는 오래전 캐나다 오강남 교수의 『길벗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안정을 찾았음을 밝힌다. 지난해 신학서 『예수의 샅바를 잡다』를 써낸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조영남 대중가수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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