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로 정리해본 해방 · 분단사 '나는 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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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체험자의 구술을 정리해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우리에게 다소 낯설다.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매우 드물었다. 개인적 구술을 바탕으로 해방과 분단의 역사현장을 보완해 보려는 책이 두 권 나왔다. 문헌적 사료를 위주로 하는 역사 기술이 엘리트 중심의 것이라면, 구술을 통한 역사 기술은 민초들의 역사적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려는 시도다.

1914년 평안북도 박천에서 태어나 해방과 전쟁을 맞이하고 이어 남파 공작원, 비(非)전향 장기수의 삶을 거쳐 다시 북으로 돌아간 김석형씨의 일대기를 다룬 『나는 조선 노동당원이오!』는 역사 구술의 정공법을 택한 책이다.

굳이 '정공법' 이라 이름하는 이유는 녹취자가 들인 5년이란 시간과 기술(記述)상의 정치함 때문이다.

김석형씨의 구술을 통해 살아나는 해방공간, 한국전쟁에 닥친 북한의 상황, 남파공작원.비전향 장기수로 이어지는 남한 속에서의 생활공간은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생생하다.

인간 김석형의 개인사를 관통하고 있지만 이 책이 의미를 확보하는 것은 金씨의 족적이 우리 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공산당 면위원장에서 시작해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과정에 몸담았고 1960년 남파돼 1년 만에 체포됐다.

70년대 전향 권유를 넘긴 뒤 92년 형집행정지로 만 78세에 출소해 2000년 6.15공동선언에 의해 북으로 돌아갔다.

金씨의 삶 구술에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보편사의 큰 흐름이 金씨 개인사와 합류하는 부분이다.

책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남북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참석차 38선을 넘은 김구 선생과 북측 진행요원으로 참석한 金씨가 조우하는 대목이다.

그의 구술에서 김구 선생은 다소 낭만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며 북한이 연석회의를 준비하는 분위기 등도 엿볼 수 있다.

또 김일성이 주도하는 조선공산당이 해방 후 지방조직으로 확산한 뒤 신민당과 합당해 조선노동당으로 태어나기까지의 상황이 金씨가 당시 살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소개된다.

책이 지니는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구술 내용의 신빙성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가감없이 나열하는 金씨의 개인사가 자주 중첩하거나 두서없이 이어지고, 객관적 사실(史實)에 그 개인사를 빗대 보려는 노력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독자는 따라서 金씨의 구술이 어느 만큼 '진짜' 인지 자주 헷갈릴 수 있겠다.

평북 사투리를 그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오기(誤記) 등도 지적하고픈 대목이지만 어쨌거나 본격적인 구술사를 엮어 보려는 저자의 의도가 돋보이는 책이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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