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출동 경관, 83%가 소극적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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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한 남편(60)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리던 주부 박모(48.서울)씨는 지난 8월 남편이 골프채로 위협하며 자신과 두 딸을 구타하려 하자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관은 "남편이 때리려고만 했지 (박씨가) 맞은 것이 아니다"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채 돌아갔다. 서울여성의전화에 상담을 요청한 박씨는 "경찰관이 돌아가자 남편이 한시간 동안이나 나를 두들겨 팼다"며 울먹였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대표 박인혜.이하 여전)이 지난 1~8월 가정폭력을 당했다며 상담해 온 주부 가운데 남편을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찰관의 82.6%가 이처럼 가정폭력 사건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를 보호시설로 인도하는 등 조치를 한 경우는 6.3%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가정폭력으로 여전과 상담한 주부 가운데 78명은 '남편에게서 폭력을 당하고도 아예 경찰에 신고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신고 후 남편의 보복이 두렵다'(32.5%)거나 '신고해 경찰이 와도 소용없다고 생각했기 때문'(12.5%)이라고 응답했다.

1998년 7월 시행된 가정폭력방지법은 '가정폭력 신고를 받은 경찰은 현장에 즉시 출동해 폭력 행위를 제지하고 수사해야 하며 피해자가 동의할 경우 피해자를 상담소나 보호시설로 인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전의 신연숙 인권국장은 "경찰관이 가정폭력을 범죄로 간주하지 않고 부부싸움으로 인식해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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