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보기] 승부 집착 관람문화 벗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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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지난주 우리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대회가 막을 내렸다. 각 대륙의 챔피언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는 이 대회가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내년 한.일 양국이 공동개최하는 월드컵대회의 전야제 성격이 컸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점검도 중요했지만 세계적인 행사를 앞두고 각 분야의 준비태세를 점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고 유익했다.

그런데 대회 후 비록 일각에서지만 한국대표팀의 실력을 개탄하며 이러다간 내년 월드컵이 안방에서 남의 잔치만을 벌여주는 꼴이 되지 않겠느냐며 걱정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사실 월드컵조직위원회나 축구협회 관계자들은 이 대회 전부터도 걱정이 태산같았다. 한국이 내년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지 못할 경우 국민적 비난은 물론 대회의 성공 여부도 자신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도 한국이 4위에 올랐기에 국민적인 일체감을 끌어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성공작이란 평가도 받을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아무리 준비가 완벽해도 경기 결과가 만족할 만하지 않으면 국민적 일체감을 끌어내기 어렵고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기도 어렵다는 게 월드컵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우려다.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는 한국 스포츠팬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이같은 우려는 이해가 된다. 그동안 국가대표팀에 대한 사랑이 하루아침에 원망으로 바뀐 예를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16강에 오르지 못한다고 해서 월드컵대회가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생각도 지나친 기우다.

그런 면에서 이번 컨페더레이션스대회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된다. 비록 한국이 4강 진출에 실패해 한국팬들에겐 흥미없는 대회가 돼버렸지만 4강전이나 3, 4위전에 모인 관중, 그리고 TV중계에 쏠린 관심 등은 월드컵을 앞둔 우리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는 것이었다. 오히려 우리 관람문화가 이를 계기로 한차원 높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감독들은 종목을 불문하고 늘 한국선수들은 기술이나 열정은 훌륭한데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어릴 때부터 코치의 주입식 교육에 길들어 스스로 길을 열어나가는 능력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 코치들은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경기 자체를 즐기라고 충고하곤 한다.

경기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선수뿐만이 아니었다. 관중인 우리 스스로도 이기고 지는 데만 초점을 맞춘 초보적 관람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경기〓승부' 라는 도식이 선수나 관중의 머리에 꽉 차 '즐기는 문화' 가 자리잡을 틈이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경기 자체를 즐기는 차원으로 우리의 스포츠 문화를 한 단계 높여가도록 하자. 그래서 내년 월드컵에선 우리팀의 경기 결과를 초월해 세계의 모든 팀들에 뜨거운 갈채를 보내는 성숙한 문화를 선보이도록 하자.

권오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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