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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사람] 남호경 한우협 경북지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지난달 5일 전 국민의 눈이 경주시 건천읍의 한 축산농가로 쏠렸다.

호주에서 수입한 살아있는 소(生牛)의 농가 반입차량을 막는 축산농민들이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농가 앞에서 꼬박 이틀동안 대치하는 모습이 시시각각 보도된 때문이다.결국 호주산 소들은 경주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한 채 쫓겨났고,수입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반입저지 시위의 한 가운데엔 사단법인 전국한우협회 대구경북지회의 남호경(南浩景·52)지부장이 있었다.

그는 경주시 외동읍 구어리에 4천평의 한우농장인 '목민농장'을 경영하는 축산인이자 축산농민단체인 한우협회를 이끌고 있다.

경주는 7천여 농가에서 한우 4만5천여두를 기르는 전국 최대의 한우생산단지여서 그의 입김도 셀 수밖에 없다.

호주산 소 파동 이후 상황이 궁금해 12일 경주시 노서동 한우협회 경주시지부로 그를 찾아갔다.운동화에 점퍼 차림인 그에게서 '투사'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수입 소 얘기를 꺼내자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1종 전염병에 걸린 소가 들어와도 정부는 묵묵부답이니 참...."

수입 소의 농가반입을 막은 또다른 이유를 물었다.

그의 설명."호주산 수입 소(4백50㎏)는 6개월,한우 송아지는 15개월 정도 키우면 6백50㎏정도 돼 도축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생산원가는 소값과 사료값을 합쳐 수입소는 2백30만원,한우는 2백80만원이 듭니다."

문제는 수입 소가 '한우'로 둔갑하는 것이라고 한다.

6백50㎏짜리 한우의 가격이 3백50만원 정도.수입 소를 한우로 속일 경우 수입 소 사육농가는 6개월만에 1백20만원,한우는 15개월을 키워 70만원을 버는 셈이니 어느 농민이 가만 있겠느냐는 것이다.

유통과정이 투명하지 않은 현실 탓에 결국 수입 소 사육이 크게 늘어나 한우사육기반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南지회장은 한우를 키우며 1,2대 경주축협조합장을 지낸 부친(83)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축산업에 눈을 떴다.성적도 좋은 편이었지만 굳이 축산과를 고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졸업 후 낙농업체에 근무하면서 경주시 암곡동 야산 7백㏊와 경남 양산의 돌산 4백㏊를 초지로 바꾸면서 '목장조성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초지는 불을 질러 풀·나무를 태운 뒤 풀씨를 뿌리는 식으로 만들었다. 화전(火田)식이다.산불을 지른 혐의로 산림청에 잡혀가 조사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1985년 직장생활을 접고 퇴직금 3백만원으로 한우 송아지 16마리를 장만해 지금의 목민농장을 열었다.4천평의 초지를 직접 일구고 소도 2백마리로 늘렸다. "돈도 꽤 벌었다"고 말했다.

돈을 번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가격이 떨어질 땐 송아지를 사고,값이 좋을 때 팔았다"는 대답이다.

축산농가가 어려운 것은 '규모'가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전국 최대의 한우 생산단지인 경주의 농가당 평균 사육두수는 6.7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거세우(去勢牛)를 양산해 질 좋은 고기를 얻고,품질이 좋은 암소도 대량 육성해 고급육 생산기반을 구축할 생각입니다."

그는 "정부가 정치논리를 떠나 제대로 된 축산정책을 세워 달라"고 호소했다.

홍권삼 기자

*** 남호경 지회장은...

▶1949년 경주시 외동읍 출생

▶ 73년 영남대 축산과 졸

▶ 79∼82년 봉명산업㈜ 도투락목장 사료과장

▶ 82∼85년 삼원축산㈜ 축산사업부장

▶ 85∼현재 목민농장 경영

▶ 95년 새양축가상 석탑산업훈장 수상

▶ 98∼현재 경주축협 이사

▶ 99∼〃 전국한우협회 대구경북도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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