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백신 파문 실체 '집단히스테리' 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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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홍역백신을 맞은 일부 중학생들에게서 나타난 어지럼증.구토.마비 등의 증상이 단체접종 때 발생할 수 있는 집단 히스테리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면서 이 병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

집단 히스테리란 인간의 욕구가 적절히 배출되지 못하는 억압된 상태에서 발작.복통.구토.사지마비 등의 히스테리 증상이 집단적으로 발생하는 것.

서울중앙병원 정신과 한오수 교수는 "이번 사태뿐 아니라 연예인 공연 때마다 열광하는 청소년들, 남북 정상회담 때 북한주민이 보여줬던 광적인 몸짓, 히틀러시대 나치에 열광하는 모습이 모두 집단 히스테리 증상" 이라고 설명한다.

이 병의 특징은 암시에 의해 정서적 전염성이 강한 집단에서 잘 발생한다. 따라서 청소년은 물론 성인도 개인주의 성향을 띤 사람보다 집단적인 목적을 위해 훈련된 사람들에게 더 잘 나타난다는 것.

국내 의학계에 처음 보고된 것은 1977년 7월 초. 당시 전국 5개지역(경북 예천.강원도 정선.경남 김해와 명지면.경남 마산)에서 중.고등학생들이 갑작스러운 경련발작.의식혼미.두통 등을 호소하자 괴질주의보와 함께 임시휴교조치까지 내렸었다.

당시 현장을 조사했던 삼성서울병원 소아정신과 김이영 교수는 "증상의 전파과정을 보면 세 집단이 있다" 며 "처음 한두명(초발 환자)이 오한.구토.두통.어지럼증.사지마비.히스테리성 발작 등의 증상을 보이면 그 모습을 보고 뒤이어 몇명이(중개자)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며 이어 다시 몇 명(최종 발병자, 피동적 환자)이 같은 증상을 보인다" 고 밝힌다.

김교수는 "초발환자의 특성은 혼자서도 병적 발작을 일으켰거나 일으킬 소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라고 설명한다. 또 히스테리 성격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으며, 때론 부모가 아이에게 무관심한 경우도 많다.

중개자 역시 히스테리 성격의 소유자이며, 심리적 갈등을 흔히 보인다. 따라서 계기만 있으면 히스테리 증상이 나타나며 다른 친구의 증상을 보면 쉽게 동일한 증상이 나타난다.

최종 발병자는 부화뇌동하는 그룹으로 두드러진 심리적 갈등이나 성격상의 문제점은 없다.

서울대 의대 소아정신과 조수철 교수는 "특히 청소년들은 자신과 남을 동일화시키면서 주변의 관심을 끌고자 하기 때문에 히스테리 증상이 쉽게 전파된다" 고 들려준다.

일단 집단 히스테리 증상이 나타나면 환자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현재 상태가 별 일이 아니며 정말로 괜찮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암시나 공포심이 집단적으로 조성되면 뒤이어 환자가 자꾸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교수는 "77년에도 언론이 연일 집단괴질로 보도하면서 공포심이 확산돼 다른 지역에 잇따라 환자가 발생했다" 고 강조한다.

집단 히스테리 발작을 예방하려면 우선 청소년기에 자신과 남, 혹은 집단과 자신을 구별하는 건전한 자아정체성이 확립돼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위인전을 많이 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

조교수는 "역사적인 여러 인물들을 자신의 이상형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독립성도 키워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자아를 확립할 수 있다" 고 조언한다.

건전한 취미활동이나 스포츠를 통해 억눌린 심리를 발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런 활동을 하는 아이들은 누군가를 맹목적 추종하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황세희 전문위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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