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30대그룹제' 폐지론 힘 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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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규모 기업집단(30대 그룹) 지정 문제를 놓고 재계와 정부간 줄다리기가 소강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풀어달라는 재계의 입장은 변함없고, 공정거래위를 제외한 다른 경제부처에선 재계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며 하반기 중 폐지를 포함한 제도 개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기업의 투명경영과 지배구조 개선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전제 조건에서다.

◇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식 규제〓30대 그룹 지정제도는 1987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한국은 금융.외환시장 개방이 거의 안된 상태였다. 대기업들은 은행 돈을 독차지하며 기업을 키웠다. 이 상황에선 30대 그룹을 정해 문어발식 확장을 막고 돈이 한쪽으로 몰리는 것을 막자는 논리가 먹혔다.

90년대 들어 시장이 개방되고 벤처기업들이 쑥쑥 자라며 이 제도는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막기보다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강한 규제' 로 인식됐다. 91년 종업원이 4백88명에 불과했던 거평은 계열사끼리 빚보증을 서주는 식으로 계열사를 22개로 늘려 생긴 지 6년 만에 30대 그룹 대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30대 그룹 편입과 함께 채무보증이 어려워지고 은행이 돈줄을 죄자 98년에 부도났다. 30대 그룹 밖에선 계열사를 늘리다 30대 그룹이 되면서 부실해진 대표적 사례다.

또 이 제도로는 벤처기업의 확장에는 대응할 수 없다. 99년 벤처 붐과 함께 등장한 메디슨.골드뱅크 등은 아무런 제한없이 계열사를 10~16개로 늘렸다. 시장개방과 함께 대거 들어온 외국기업과의 역차별도 문제다. 노키아TMC는 매출액이 1조7천억원(99년 현재)으로 30대 재벌 순위 23위인 하나로통신(매출액 4천억원)과 29위인 태광산업(1조9천억원)보다 많거나 비슷한데 단일회사라는 이유로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 대안을 찾자〓기업의 투명경영이 확립되고 은행을 중심으로 한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면 굳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는 "기업이 무엇을 하고, 하지 않을지와 빚을 낼지 말지는 스스로 결정할 일" 이라며 "잘잘못은 시장이 평가하도록 하고 정부는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재정경제부 등 정부는 장차 ▶30대 그룹 지정제도는 없애고▶채무보증이나 상호출자를 금지하는 일은 채권단이 알아서 하도록 하며▶금융감독원이 채권단을 감독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출자총액제한(순자산의 25% 이내)의 한도를 높이는 것도 고려 대상이다. 특히 30대 그룹 지정제도를 이용해 여러가지 진입장벽을 친 25개 개별 법은 전면 재검토해 필요한 것만 남기고 규제를 풀어야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상법을 바꿔 벤처 등 후발 중견기업의 무분별한 회사수 늘리기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상법은 개별.독립 회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그룹 계열사간 관계를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송상훈.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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