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왜 우리는 서로를 물고 뜯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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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UDT(해군특수전여단)·53세·준위. 군대 갔다온 사람이면 이 세 단어의 무게를 다 안다. 분명 고(故) 한주호 준위는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됐다. ‘UDT의 전설’로 존경 받으며 느긋한 말년을 누릴 위치였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해군의 명예를 건지려 물에 뛰어들었을 게 분명하다. 누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그 전날 인터넷엔 이런 글이 올랐다. “내가 다이빙을 잘 아는데 아무리 파도가 거세도 막상 물에 들어가면 잠잠하다.” 이 네티즌은 “차라리 우리 동호회 멤버들이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 비아냥거렸다. 수많은 댓글이 꼬리를 물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온 국민이 알도록 퍼나릅니다”….

이 네티즌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2004년 3월 19일자 중앙일보 기사가 있다. “해저 308m 잠수 기록을 가진 세계 최고의 테크니컬 스쿠버다이버가 우리 서해에서 잠수 도중 사라졌다. ‘물고기 인간’ 존 베넷(44·영국)의 실종 장소는 전북 부안군 상왕등도 인근 앞바다. 64m 아래 침몰한 외국 화물선을 조사하러 들어간 베넷은 서해의 강한 물살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물속 시계도 2m밖에 안 돼 사흘째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그의 시신은 영원히 찾지 못했다. 백령도 바다는 더 험하다. 다이버 동호회의 놀이터가 아니다.

대엿새 동안 인터넷을 보면서 돌아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끝물인지 온갖 음모론이 난무한다. 아군끼리 오폭(誤爆)했다는 ‘팀킬’에서 청와대가 주범이라는 막가파식 시나리오까지 나돈다. 그제 이명박 대통령이 백령도를 방문하자 이런 댓글까지 붙었다. “범인은 범행 현장에 반드시 다시 온다.” 요즘 자칭 ‘천안함을 탔던 예비역’이란 네티즌은 왜 그리 많은가. 아이디로 미뤄 보면 여성으로 보이는 글도 적지 않다. 야당도 덩달아 신이 났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라디오에서 “아버님, 지금 비상이니 나중에 전화하겠습니다”라고 통화했다는 실종자 가족의 증언을 소개하며 “모종의 작전을 진행하다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경이 공개한 구조 비디오를 보면 한마디로 황당한 시나리오다. 전투위치에 배치됐어야 할 병사들이 어떻게 속옷 차림으로 탈출하는가.

미국의 9·11 테러 때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영웅이었다. 흙 묻은 구두와 땀에 찌든 양복 차림으로 41차례나 폐허 위에 섰다. “내일도 뉴욕은 이 자리에 있을 겁니다. 우리는 무너진 자리를 다시 세울 겁니다.” 그의 외침은 미국을 안도시켰다. 그러나 정말 진정한 영웅은 뉴욕 시민들이었다. 첨단 유전자 감식 기술을 총동원했으나 결국 1164명(희생자의 42%)의 유해는 한 조각도 찾지 못했다. 건물 잔해와 뒤섞여 매립지에 버려졌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도 뉴욕시민들은 참았다. 추도식은 희생자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그라운드 제로에 조용히 꽃을 바치는 것으로 대신했다. 대참사 앞에서 그들은 단결했다.

왜 우리는 서로 물어뜯는가. 광우병 파동 때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전문가로, 황우석 사건에는 배반포까지 외워가며 치고받았다. 이제는 해군 전문가로 변신해 싸우는 중이다. 기뢰·폭뢰·어뢰 구분은 이미 상식이고, 버블제트 효과쯤은 줄줄 외워야 한다. 천안함 절단면이 깨끗하다는 소식이 나오자 갑자기 인터넷에선 기뢰설(說)이 침몰하고 선박 노후화에 따른 피로 파괴설이 급부상했다. 서로 거품을 물고 싸운다. 이러다간 천안함 대신 나라 전체가 두 동강 나 가라앉을 판이다.

어차피 정확한 침몰 원인은 선박 인양 이후에야 속 시원히 가려질 일이다. 군의 초동 대응이 훌륭했다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대놓고 타박하는 것도 지나치다. 뉴욕 시민들은 자욱한 테러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야 수습 때의 문제를 따지기 시작했다. 지금 그나마 믿고 의지할 곳은 해군밖에 없다. 한 준위의 숭고한 희생을 보면서 말을 아끼고 지켜볼 때다. 그러나 겁난다. 아마 이 글이 읽힐 때쯤 인터넷에선 ‘천안함을 만든 사람입니다’라는 네티즌끼리 서로 물어뜯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이철호 논설위원